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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450조 승부수

시스템LSI·팹리스·OSAT '동반성장' 어떻게 가능할까

설계자산 분야 협력으로 성장 지원…OSAT 생태계에도 영향

김혜란 기자  2022-05-30 14:27:03

편집자주

삼성이 5년간 45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공표했다. 지난해 '3개년 240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한지 1년여 만의 전격적인 수정 결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며 승부수를 띄웠다. 미래산업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기업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이번 투자계획을 둘러싼 삼성의 전후사정과 향후 전략을 살펴봤다
삼성전자가 올해 발표한 '450조원 투자 계획'에는 지난해 내놓은 계획안에는 없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전자 내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의 성장이 '중소형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와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엔 시스템LSI사업부를 중심으로 국내 팹리스 생태계를 어떻게 강화할지 구체적인 복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어떻게 동반성장이 가능할까.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중소형 팹리스가 설계자산(IP) 분야에서 협력하며 차세대 반도체 칩을 공동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팹리스 생태계 강화 지원 내세운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올해 발표한 투자 계획의 핵심은 반도체 산업의 3대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와 팹리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모두 주도해 '반도체 초강대국' 기반을 닦겠단 것이다.

특히 삼성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팹리스(시스템LSI 사업부) 경쟁력 강화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에도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었는데, 당시엔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관련 생태계 조성을 지원한다'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겼던 지점이다.

삼성은 보도자료에서 "팹리스 시장에서 중앙처리장치(CPU)는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 시스템온칩(SoC)은 퀄컴, 이미지센서는 소니라는 강자가 포진해 있다"며 "삼성전자는 주요 팹리스 사업 중 모바일 SoC, 이미지센서 등은 투자, 연구·개발(R&D)로 기술력 간격을 줄이며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의 팹리스 1 등 도약은 (다른 국내) 팹리스, 디자인 하우스, 패키징, 테스트 등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동반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24일 발표한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 계획 중 팹리스 분야에 대해 설명한 내용.

◇IP 개발 협력, MPW 지원 등 가능성

삼성전자는 중소형 팹리스와의 동반성장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협업 포인트 시뮬레이션과 설계자산(IP),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여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MPW는 하나의 웨이퍼에 여러 종류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시제품은 MPW 형태로 만들어진다. 팹리스가 신제품을 개발하려면 시제품 테스트 과정이 꼭 필요한데, 파운드리 입장에선 중소형 팹리스를 위해 수익성이 높지 않은 MPW 생산라인을 빼주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국내 팹리스 생태계 강화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MPW 서비스를 더욱 늘릴 수 있다.

IP 관련해선 어떤 식으로 협업할 수 있을까.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시스템LSI 사업부도 국내 중소형 팹리스들과 협력할 수 있다. AP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는 여러 칩이 결합돼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반도체는 설계자산(IP)이 물리적 제품으로 구현된 것이다.

시스템LSI 사업부가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때 일부 IP는 중소형 팹리스가 설계하도록 공조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4차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 반도체가 무궁무진하게 개발될 수 있다. 삼성이 모든 반도체 칩을 일일이 생산할 수 없으니 중소형 팹리스에 외주 협력 관계로 공동 개발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규모가 큰 칩은 안에 들어가는 칩 중 스페시픽한(구체적인) 칩 일부는 중소형 팹리스에 설계를 요청하고 구매해 쓰는 식으로 협력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팹리스가 삼성이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게 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삼성도 (외주 협력사를) 확실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디자인하우스 협력사인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는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이에서 반도체 설계 도면을 제조용 도면으로 다시 디자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를 외주 협력사에 맡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델로 시스템LSI 사업부와 다른 중소형 팹리스도 IP 협력파트너로 묶이면 동반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작년 8월 발표한 240조 투자계획 중 반도체 분야 투자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부문

◇시스템LSI사업부 도약은 OSAT 생태계 성장으로 이어진다

삼성의 이번 투자 계획안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삼성의 팹리스 1 등 도약이 팹리스, 디자인 하우스, 패키징, 테스트 분야 동반성장을 이끈다'고 적은 부분이다.

반도체 공정은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뉘는데 패키징과 테스트 작업은 후공정에 속한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철저히 분업화돼 있어 후공정은 OSAT(반도체 패키징 테스트 외주 기업)라는 별도의 기업이 맡는다.

대만 ASE, 미국 AMKOR, 중국 JCET 등 반도체 경쟁국들은 OSAT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을 배출했으나 한국은 유독 후공정 생태계가 취약하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사업부가 성장하면 OSAT 업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도체 생산 밸류체인 흐름을 보면 OSAT의 고객사는 팹리스이기 때문이다. 팹리스가 파운드리에 물량을 줄 때 후공정 기업도 같이 지정한다. 파운드리에서 전공정이 끝난 뒤 OSAT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최종 고객사인 팹리스에 보내진다. 삼성전자의 팹리스 경쟁력이 강화되면 국내 OSAT의 수주 물량 증가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측은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동반성장'을 위해) 아직 어떤 것을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발표한 건 없지만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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