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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팽창 장기CP 시장 긴급점검

여전회사가 시장 확대 주도…시장금리 왜곡 우려

②1~4월 전년대비 3배 이상 증가…상대적 저금리 장기CP가 시장가격 왜곡

이상원 기자  2022-05-13 14:48:18

편집자주

장기CP 시장이 뜨겁다. 금리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이 만기가 긴 회사채를 외면하자 발행사들은 조달이 상대적으로 쉬운 장기CP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시장 팽창으로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장기 CP의 경제적 실질은 공모 회사채와 동일하지만 사모형태로 발행되면서 비롯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벨이 장기CP 시장을 긴급 점검해본다.
여전사가 국내 장기 기업어음(CP) 시장의 팽창을 주도하고 있다. 수신기능이 없는 여전사 특성상 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가운데 장기CP 발행을 늘린 결과다. 당초 카드사 중심이던 시장이 지난해부터 캐피탈사까지 대거 데뷔하며 발행 규모를 키우고 있다.

여전사들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여전채 투자수요가 감소하자 장기CP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전채보다 유리한 장기CP 금리를 감안하면 일괄신고제의 메리트도 떨어져 여전채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다만 장기CP 발행이 과도할 경우 장단기금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CP, 캐피탈사로도 확산…유명무실해진 여전채 일괄신고제

국내 장기CP 시장에서 카드사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수신기능이 없어 수요가 존재하는 한 최대한 외부 조달을 집행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CP의 경우 발행사의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한다는 점에서 대부분 'AA' 등급의 카드사는 손쉽게 발행해 왔다.

최근 몇 년간 장기CP에 대한 수요가 크지는 않았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우호적인 여전채 발행 환경이 지속되면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여전채 시장의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좋을 때 가장 먼저 좋아지는 게 여전채 시장"이라면서 "반대로 시장이 나쁠때 가장 먼저 경색되는 것도 여전채 시장"이라고 말했다.

여전채 조달 여건이 악화되자 자금 조달 수요가 큰 캐피탈사들도 잇따라 장기CP 발행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이후 신한캐피탈, KB캐피탈, 우리금융캐피탈, NH농협캐피탈, 애큐온캐피탈, 엠캐피탈, 오케이캐피탈 등이 새로운 이슈어(Issuer)로 데뷔했다. 카드사 중에는 하나카드와 BC카드가 데뷔했다.

발행사가 늘어난 만큼 발행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올해 1~4월 기준 여전사의 장기CP 발행량은 6조9100억원으로 약 7조원에 육박한다. 전년 동기(2조2100억원)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전체 장기CP 발행량(7조7500억원) 대비 여전사 비중은 89.1%에 해당한다.

여전사들은 일괄신고제를 통해 여전채를 편리하게 발행할 수 있지만 금리 인상으로 이마저도 메리트가 떨어진다. 장기CP 금리가 여전채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더 저렴한 조달 비용을 감안하면 일괄신고제 효용성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신한카드의 경우 지난 11일 기준 일괄신고서 잔액은 1조6500억원에 달하지만 올들어 5차례에 걸쳐 장기CP를 발행했다.

다만 장기CP의 만기 구조가 갈수록 장기화되고 발행규모가 커지고 있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에도 수요예측을 진행하지 않는 등 간편한 절차로 금융당국의 사각지대를 확대한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발행 당시 할인율을 제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할인채 형태로 원금상환 이전에는 발행사의 원리금상환능력 변동을 확인할 방법이 제한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7년물을 찍으며 만기 구조를 크게 늘렸다. 한번에 5000억원 이상 발행하는 등 발행 규모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CP는 당초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리볼빙하는 방식으로 정착됐다”며 “국내에서는 CP에 대한 규제가 채권 대비 상대적으로 루즈하면서 규제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만기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전사 조달 수단 장기CP에 집중…장단기금리 왜곡 우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여전사들에게 조달 채널 다각화를 요구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증시 폭락으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가 벌어지자 증권사들은 약 1조원에 달하는 채권 매각에 나섰다. 이에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여전채 중심의 조달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여전사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여전사들은 장기CP 발행을 늘리며 금융당국 지침에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비중을 크게 확대했다. 여전사 평균 장기CP 발행 잔량은 1조원을 돌파하며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여전사 업계 관계자는 “여전사들마다 CP 한도를 정해 여전채와 조달 비중을 보수적으로 정한다”며 “장기CP로 과도한 쏠림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규제로 장기CP 발행이 제한돼 있지 않는 한 회사의 자체적인 한도는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CP 역시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공모채와 달리 대표이사 직권으로 발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시장 관계자는 “내부적인 제한은 이사회 결의로 늘리거나 풀어버리면 그만이다”며 “리스크 관리 차원으로 규제적으로 강압에 의해 한도를 풀지 못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여전채 조달 비중을 낮춰야 한다면 굳이 장기CP가 아니더라도 전자단기사채와 단기 CP 등으로도 대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장기CP 발행이 과도할 경우 장단기금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장기CP 금리가 여전채를 기준으로 정해지지만 여전채가 아닌 만큼 민평금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장기CP의 발행이 과도하게 증가할 경우 장단기 금리 및 시장유통금리를 통한 발행사에 대한 시장 감시능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한 장단기 금리 왜곡이 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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