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에게 변화는 숙명이다. 성장을 위해, 때로는 생존을 위해 변신을 시도한다. 오너십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보다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경영권 거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파장도 크다. 시장이 경영권 거래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경영권 이동이 만들어낸 파생 변수와 핵심 전략, 거래에 내재된 본질을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반도체 설계자산(IP) 전문업체 칩스앤미디어의 최대주주가 텔레칩스에서 한국투자파트너스로 변경된다. 텔레칩스는 인수 12년 만에 5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둘 예정이다. 칩스앤미디어는 마지막까지 알짜 자회사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텔레칩스는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손에 넣었고, 칩스앤미디어는 한 단계 높은 성장을 위한 환경 변화를 눈앞에 뒀다는 평가다.
텔레칩스는 최근 지분 34.5% 중 26.5%를 한국투자파트너스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양도주식수는 255만4683주이며 1주당 매매가액은 2만2820원으로 정했다. 오는 6월 15일 현금을 수령하면 계약이 완료된다. 이를 통해 583억원을 확보할 예정이다. 2009년 인수 당시 금액은 72억원이었는데, 12년 만에 매각을 통해 5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둘 예정이다. 양도 후에도 남은 주식은 77만1380주(지분율 8%) 규모다.
텔레칩스가 칩스앤미디어의 지분을 매각한 배경에 사업적 방향성의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지분을 인수한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한 투자사들은 칩스앤미디어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텔레칩스는 그동안 칩스앤미디어와 협업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양사의 사업 연관성은 점차 낮아지는 모습이다. 특히 텔레칩스가 추진하는 사업 확장 계획에서 이 같은 구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오너가 칩스앤미디어에 공격적인 경영 환경을 조성해준다면 성장 잠재력을 개방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
다만 텔레칩스는 지분을 모두 매각하지 않고 8%를 남겼다. 이는 양사 간의 합의에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파트너가 칩스앤미디어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에는 반도체 산업에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존 오너인 텔레칩스가 일부 지분을 보유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정 역할을 수행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롭게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업무집행사원으로 기관 전용 사모집합투자 기구인 '한국투자 시리우스 바이아웃 사모투자 합자회사'를 설립해 계약상 지위를 승계할 예정이다. 칩스앤미디어는 2003년 미국 통신용 반도체업체 지씨티 출신 연구원들이 뭉쳐 설립했다. 텔레칩스는 2009년 지분 34.5%를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2013년 코넥스 시장에 상장했고 2년 뒤인 2015년 코스닥 시장으로 이전 상장하며 기업가치를 높였다.
칩스앤미디어는 국내 유일의 반도체 설계 IP 전문업체로 주목받았다. 비디오 코덱 등과 관련한 IP를 제공하고 라이선스 요금과 로열티를 수익으로 챙긴다. 설계 기술을 개발해 판매하는 온전한 지식 사업이기에 특별한 설비나 기기가 필요 없고 재고가 쌓일 염려도 없다. 덕분에 매출원가가 0원으로 잡혀 높은 수익률을 자랑한다.
칩스앤미디어의 실적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에는 주춤했지만 지난해 곧바로 성장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118.4%, 225.1% 증가한 52억원, 6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00억원으로 29.7%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