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이 지배구조를 손질해 지주사 곳간을 채운다. 순수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자회사 동원산업과 합쳐 사업지주사로 전환한다. 지주사로 흘러가는 현금 덩어리를 키워 투자 재원을 만들어 가는 수순으로 풀이된다.
코스피 상장사인 동원산업이 비상장사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해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소멸하고 동원산업이 존속하는 구조다. 동원산업이 동원그룹 지주사로 올라가면서 지주사 형태도 순수지주사에서 사업지주사로 바뀐다. 합병 기일은 오는 10월 1일이다.
동원그룹이 내세운 명분은 지배구조 단순화다.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중간 지배회사 역할을 하던 동원산업을 합쳐 중첩됐던 종속기업 관리 기능을 일원화한다. 조직 운영 측면에서 인적·물적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해 경영 효율화를 도모한다.
합병 배경이나 효과가 다소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동원그룹은 2001년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해 지주사 체제를 확립했다. 승계 작업도 끝냈다. 2003년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해 금융그룹을 계열 분리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은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이끌고 있다. 김 명예회장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은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 68.72%를 보유한 동원그룹 최상위 지배주주다. 합병 이후에도 동원산업 지분 48.43%를 들고 동원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선다.
이번 합병은 지주사 중심으로 투자활동을 펼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합병 이후 지주사 현금흐름은 180도 달라진다.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받던 자회사 배당 수익에 동원산업이 만드는 영업현금흐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순수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자회사 배당금 수입이 주요 현금 창출원이었다. 코스피 상장사인 동원산업(지분 62.72%), 동원F&B(지분 74.38%), 동원시스템즈(보통주 지분 80.39%, 우선주 지분 30.77%)와 비상장사 동원건설산업(지분 100%)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지주사 단독으로 대규모 투자활동을 펼치기엔 부족한 현금흐름이었다. 지난해 동원엔터프라이즈 개별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플러스(+) 543억원이었다. 2019~2020년 영업활동현금흐름 유입액은 240억~270억원 수준이었다. 배당 지급, 유·무형자산 취득 등 자본적 지출을 제한 잉여현금흐름은 2019~2020년 100억원 안팎에 머물다 지난해 421억원으로 늘었다.
동원산업은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주력 계열사다. 1969년 김 명예회장이 창업한 곳으로 동원그룹의 뿌리다. 물류사업과 참치 등 수산물을 가공·판매하는 유통사업, 수산물 어획하는 수산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2020년부터 개별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분 투자나 차입 상환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잉여현금흐름은 7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종속기업에서 배당수익도 들어왔다. 합병 이후에는 온전히 지주사 몫이 된다. 동원산업은 2020년까지 배당금 수취액이 1억원도 안 됐다. 지난해 100% 자회사 스타키스트(StarKist)가 배당금 111억원을 지급하면서 투자활동현금흐름에서 배당금(115억원)이 유입되고 있다. 스타키스트는 미국에서 참치제품 가공·유통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20년부터 연결 기준으로 당기순이익 1000억원을 내면서 배당 여력이 생겼다.
동원그룹은 그동안 지주사보다 자회사 중심으로 투자활동을 펼쳐 왔다. 동원산업은 2010년 스타키스트, 2017년에는 동부익스프레스(현 동원로엑스)를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동원F&B는 2000년대 초반 디엠푸드와 해태유업, 삼조쎌텍 등을 인수했다. 2017년에는 353억원을 투자해 두산생물자원(현 동원팜스) 지분 100%를 확보했다. 지주사보다 자회사에 딸린 손자회사 많은 형태로 계열구조가 형성된 이유다.
올해 지주사가 투자 채비로 분주하다. 동원엔터프라이즈가 300억원을 출자해 100% 자회사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동원기술투자도 설립했다. 사업지주사 전환까지 이뤄지면 CVC가 발굴한 투자처에 후속 투자를 집행할 투자 여력을 갖추게 된다. 합병 이후 동원산업은 기존 이명우 동원산업 사장과 박문서 동원엔터프라이즈 사장이 각각 사업 부문과 지주 부문을 담당하는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