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주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 규모가 작은 소액주주를 소위 '개미'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업공개(IR), 배당 강화, 자사주 활용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힘주고 있다. 더벨이 기업의 주주 친화력(friendship)을 분석해봤다.
HD현대(현대중공업지주)의 주요 자회사들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표 사업인 조선업을 총괄하는 중간지주사다. 그룹 대표회사로서 대규모기업집단 현황공시를 내는 곳도 그룹 지주사 HD현대가 아닌 한국조선해양일 만큼 명실상부한 그룹의 중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은 8년째 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HD현대가 고배당정책을 앞세워 주주환원에 힘쓰는 동안 기여도는 제로다. 때문에 HD현대 투자자들은 한국조선해양의 배당 재개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의 배당으로 HD현대의 주주환원이 더욱 탄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HD현대 TSR, 현대오일뱅크 받치고 한국조선해양 기여 ‘0’
HD현대의 TSR(총주주수익률) 변화를 살펴보면 출범 연도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5년에 걸친 TSR은 -11.7%다. TSR은 주식 배당금에 시가총액 상승분을 더해 산출되는 수치로 주주가 주식 보유를 통해 누리는 총 이익을 뜻한다.
5년치 TSR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가총액 감소분이 2조1099억원, 배당총액이 1조3651억원이다. HD현대의 배당은 시가총액 감소에 따른 TSR 하락을 막아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HD현대는 별도기준 순이익 70%의 높은 배당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자회사로부터 수취하는 배당금이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2021년의 경우 HD현대의 별도 순이익 5021억원 중 49%에 해당하는 2453억원이 자회사 배당이었다.
HD현대의 주요 자회사로는 지분율 73.85%(1억8099만1117주)의 현대오일뱅크와 지분율 30.95%(2190만7124주)의 한국조선해양이 있다. 이들 중 현대오일뱅크는 HD현대 배당수익에서 기여도가 높은 반면 한국조선해양은 기여도가 없다.
HD현대는 2017~2021년 5년 동안 자회사로부터 1조3657억원의 배당을 수취했는데 이 가운데 75%인 1조254억원이 현대오일뱅크에서 나왔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오직 현대오일뱅크만이 HD현대에 배당을 실시했다.
반면 같은기간 한국조선해양은 단 1회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배당을 실시할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조선해양은 2017~2021년 사이 별도기준으로 2021년에만 순이익을 거뒀을 뿐 나머지 4년은 순손실을 봤다. 5년 누적 순손실은 1조126억원에 이른다.
◇배당여력 찾는 한국조선해양, HD현대 TSR 지지대 굳건해진다
일부 HD현대 투자자들은 과연 그동안 한국조선해양에 정말로 배당여력이 없었는지 의문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당장 지난해 별도기준으로 발생한 1978억원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은 모두 임의적립금의 형태로 곳간에 들어갔다. 한국조선해양은 이익잉여금이 2021년 말 기준으로 16조3526억원 쌓여 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 자회사들이 모두 업황 침체기를 보내왔기 때문에 중간지주사로서 자회사 지원에 나서게 될 가능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말 별도기준 부채비율이 3%에 불과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튼튼하지만 연결기준으로는 부채비율이 120%에 달한다. 자회사들 중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는 부채비율이 203%로 한국조선해양의 보증이 없다면 은행으로부터 선박 수주에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받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 수준이다.
다만 앞으로는 자회사들의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자회사 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는 지난해 합산 수주목표 149억달러의 154%에 이르는 229억달러어치 선박을 수주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이 물량이 실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는 한국조선해양이 자회사 지원 부담의 완화에 힘입어 배당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HD현대의 배당재원 중 하나로 한국조선해양의 배당금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그동안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으나 별도기준 순이익의 30%를 배당한다는 배당정책은 수립돼 있다.
HD현대는 올해 투자형 지주사로서의 역할 강화를 공언하고 있다. 투자성과가 가시화할수록 시가총액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TSR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투자 확대로 배당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TSR에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조선해양이 배당을 실시한다면 HD현대로서는 TSR 하락 가능성을 불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HD현대 관계자는 “투자형 지주사 역할 강화로 투자를 확대하더라도 배당성향 70%를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올해부터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현대제뉴인과 조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배당수익을 확보해 배당의 안정성을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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