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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5조 어닝 쇼크

가격 결정권 없는 독점 공기업의 '아이러니'

①지난해 전기 판매량 증가 불구 5조 손실···매출총손익부터 '적자' 전환

양도웅 기자  2022-04-27 16:27:57

편집자주

'전력 공룡'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이 자그마치 5조2200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이 이익으로 내기 힘든 숫자를 손실로 냈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답은 '전기 요금 현실화'이지만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뜨뜻미지근한 모양새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과 비용을 대신 짊어진 한전을 더벨이 살펴본다.
총자산 211조원, 발전사 6곳을 포함해 자회사만 158개. '전력 공룡', '공룡 공기업' 등으로 불리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흔들리고 있다. 한 해 순손실이 5조2200억원에 육박하고 운영자금을 부채로 조달하면서 재무구조도 어느 때보다 취약해졌다. 한전의 회사채를 정부가 보증하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막대한 세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한전은 전기를 생산해 기업과 가계에 유통,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 개편으로 2001년 발전 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면서 한전이 직접 하는 사업은 송·배전과 전기 판매다. 일부 지역에서 허가를 받은 민간 사업자가 전기 판매를 하지만 사실상 한전의 독점 상태나 다름없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동발전, 중부발전 등 자회사 6곳의 발전 시장 점유율이 70%가 넘은 점을 고려하면 한전은 자회사를 통해 발전 시장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전이 실적을 확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제품인 전기를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판매하면 된다. 전기 생산·유통·판매 과정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방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전기는 필수재인 까닭에 공급자가 우위에 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다.



◇전기 125원에 사와 115원에 팔았다···팔수록 '적자 심화'

이처럼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한전은 지난해 충격적인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연결 기준 영업손익과 당기순손익이 각각 마이너스(-) 5조8601억원, 마이너스(-) 5조2292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다. 모두 최근 10년래 최대 규모의 손실일 뿐 아니라 손실 규모가 컸던 2011년과 비교해도 더 악화한 수준이다.

이는 전기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은 아니다. 지난해 한전이 판매한 전력량은 53만3431GWh로 전년 대비 4.7%(2만4161GWh) 증가했다. 비교군을 넓혀 2019년, 2018년 대조해봐도 지난해 전력 판매량은 증가한 규모였다. 전기 수요와 상관관계에 있는 경제성장률도 4.0%로 2020년 -0.9%와 비교해 플러스로 전환했다.

눈에 띄는 점은 매출총손익에서부터 손실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회사의 매출총손익은 -2조9843억원. 매출총손익이 적자를 기록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영업손익과 당기순손익이 손실을 보인 해에도 매출총손익은 흑자였다.


연결기준. (출처=한국전력공사 사업보고서)

매출총손익은 매출에서 매출원가를 차감해 구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입한 비용이 매출원가다. 원자재 매입 비용, 공장 임차료와 공장 직원 인건비 등이 해당한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가 만든 전기를 매입해 판매하는 사업 구조이기 때문에 매출원가에 구입전력비도 포함된다. 발전 자회사들의 원재료 매입비와 한전의 구입전력비가 한전의 전체 매출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전 입장에서 매출총손익이 적자라는 건 원가보다 낮게 전기를 판매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2월 발표된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균 전기 구입단가는 125.3원/kWh인데 반해 평균 전기 판매단가는 115.8원/kWh이었다.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판매한 셈이다. 꼬박 1년 전 전기를 85.7원/kWh에 사와 115.4원/kWh 판매한 것과 대비된다. 2020년엔 매출총손익, 영업손익, 당기순손익 모두 흑자였다.

특히 '보복 소비' 열풍에 따른 소비재 수요 증가, 산업 전환기에 따른 전방위적인 투자 확대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시기에 이러한 '구입단가>판매단가' 현상은 한전의 실적 악화를 부채질하는 직접적 원인이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 폭은 확대되기 때문이다.


(출처=전력통계월보)

◇'물가 인상' 예민한 정부가 가격 결정···'원가 변동에 취약'

전기 구입단가 등 원가가 상승한 건 전기를 만들 때 필요한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전량 기준으로 석탄과 LNG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상대적으로 전기 생산 비용이 낮은 원자력 비중은 30% 초반대다. 석탄과 LNG 가격의 변동에 민감한 구조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톤당 80달러 내외였던 석탄(칼리만탄 유연탄 기준) 가격은 12월 130달러 내외까지 올랐다. 10월엔 22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LNG 선물 가격도 지난해 1월 Mmbtu(100만파운드 물 온도를 화씨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당 2달러 중반대에서 12월 3달러 후반대로 상승했다. 9월엔 5.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물론 수요를 감소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러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면 실적에 부정적 요인만은 아니다. 가령 유가가 급등하면 정유사들의 주가는 동반 상승하곤 한다. 하지만 국내 전력 시장에서 사실상의 독점 기업임에도 한전은 원자재 가격과 연동해 전기 판매가격을 '현실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출처=KOMIS)

이는 한전이 철저히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독점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한전이 전기 판매가격을 조정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산자부는 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전기요금및소비자보호전문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양쪽 기관이 물가 변동에 예민한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을 결정하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기료 인상'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한전은 원가 변동 부담을 온전히 짊어지는 구조에 놓인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전 최대주주이기도 한 정부는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엔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금 인상 폭을 분기당 1kWh당 최대 3원(연간 누계 최대 5원)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기준으로 최대 인상률은 3% 내외다. 원자재 가격은 50% 이상 상승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 개입 없이 전기 판매가격이 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사장 자리에서 퇴임한 김종갑 현 한양대 특훈교수도 "선진국들은 통화량과 이자율 조정으로 물가를 관리한다"며 "요금과 수수료를 물가 관리 수단으로 삼는 선진국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산자부는 지난 3월 28일 한전의 올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0원/kWh으로 동결했다. 앞서 3월 16일 한전은 정부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33.8원/kWh 인상으로 산정하고 분기별 조정 최대 상한선인 3.0원/kWh 인상안을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출처=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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