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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대행자 역할을 맡은 등기이사들의 모임이자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구다. 이곳은 경영실적 향상과 기업 및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준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의무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된 구성을 갖췄는지, 이사를 투명하게 뽑는지, 운영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사회 활동을 제3자 등에게 평가 받고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업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이에 THE CFO는 대형 법무법인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고견을 받아 독자적인 평가 툴을 만들고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해 봤다.
반도체 장비 업체 HPSP가 2023년 선보였던 경영 퍼포먼스는 절정에 달했다. HPSP는 투자, 성과, 재무건전성 등 대부분의 섹터에서 KRX300 소속 277개사의 평균치를 훌쩍 아웃퍼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평가 결과 만점에 가까운 경영성과를 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사회 전반의 활동이 미약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압도적인 경영성과가 힘을 쓰지 못했다. 이사회 구성은 다채롭지 못했고 역동성도 아쉬움을 남긴 와중에 주주들과의 정보 공유 범위도 협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255점 중 123점 획득…'압도적' 경영성과 두각 THE CFO는 평가 툴을 제작해 '2024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지난 5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와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반기보고서 등이 기준이다. △구성 △참여도 △견제기능 △정보접근성 △평가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 등 6개 공통지표로 이사회 구성과 활동을 평가한 결과 HPSP는 255점 만점에 123점을 획득했다.
HPSP의 이사회 평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값은 단연 경영성과다. 경영성과 항목은 투자 성과 4개, 경영성과 4개, 재무건전성 3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HPSP는 평점 5점 중 만점에 가까운 4.6점을 획득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문항에서 KRX300 소속 비금융사(277곳)의 지표별 평균치를 20% 이상 상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배당수익률까지 1.70%를 넘겼다면 '경영성과 5.0점'이라는 마일스톤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다만 HPSP의 배당수익률은 0.34%로 평균치(1.42%)에도 미치지 못해 최하점을 획득했다. 2023년 약 75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지만 주가가 동종업계 대비 높게 형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값이 도출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실적 성장세와 견고한 재무 구조가 수준급 경영성과에 기여했다. 2023년 기준 HPSP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791억, 952억원으로 2022년 대비 각각 12.4%, 11.7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부채비율과 순차입금/EBITDA값도 각각 15.74%, -2.36% 선에서 끊으며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했다.
◇이사회 활동성 미약…경영성과 외 평가지표 전반 '약세' 문제는 경영성과만이 독보적으로 앞서갔다는 점에 있다. 경영성과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5개 지표의 평균 점수는 1점대에 그쳤다.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린 육각형 구조가 만들어진 것인데 이는 그만큼 이사회 전반의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동성 부재는 미약한 참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지표에서 HPSP가 획득한 점수는 1.5점으로 가장 낮다. 2023년 개최던 이사회는 총 5번으로 많다고 보기 힘들었는데 감사위원회 회의도 두 차례에 그쳤다. 물론 이사회 구성원들의 참여도는 80%를 상회했지만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를 뒷받침할 조직의 작동은 미흡했다.
그러다 보니 견제 기능도 활발하게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CEO 승계정책을 포함해 부적격 임원이 선임됐을 경우를 방지하는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HPSP는 2023년 기준 자산총액 3000억원대 상장사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의 설치 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이사 추천제나 내부거래 통제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이사회 활동에 관한 평가도 별도로 수행되지 않아 평가개선 프로세스 지표도 낮은 점수를 획득했다. 이 지표는 이사회 활동 또는 사외이사들에 대한 평가 수행 여부, 더 나아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피드백 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HPSP가 해당되는 부분은 없어 평점 1.9점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지표 전반에서 낮은 점수를 피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도 이사회 역동성이 부재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2024년 3월 HPSP는 송종호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했다. 본래 HPSP의 이사회 구성원 7명 가운데 사외이사는 채희엽, 박태홍 이사 두 명에 불과했지만 비중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