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반도체 테스트 장비 제조사 와이씨(옛 와이아이케이)의 1년 주가 그래프를 살펴보면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탄한 평야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산맥이 융기하는 모양새입니다. 그 변동이 짧은 1년 사이에 벌어집니다.
지난해 11월까지 와이씨의 주가는 3000~4000원 대를 오가는 저점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일 3120원을 기록하면서 52주 최저점을 찍었네요. 당시 시가총액은 3000억원 미만이었습니다. 거래량이 많지 않아 주가의 변동폭이 적은 소외주에 가까웠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3년 그래프로 넓혀 봐도 그래프의 등고 변동이 거의 없습니다. 3년 최저가는 지난해 1월 2690원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올해 4월을 기점으로 주가 그래프에 거대한 산맥이 솟았습니다. 반도체 장비주의 급등. 알아차리셨죠? 바로 HBM(고대역폭메모리) 관련 '리레이팅(밸류 조정)'입니다.
와이씨가 2대주주이자 전략적 파트너인 삼성전자와 HBM 관련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지난해 말부터 시장에 돌기 시작했습니다.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에서 HBM의 공급망을 SK하이닉스가 선점하자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삼성전자의 웨이퍼 EDS 검사장비를 공급하면서 사세를 키워온 파트너사로서 HBM 양산 테스트 장비 역시 담당할 거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팽배하기 시작한 거죠.
이 덕에 요지부동이던 와이씨의 주가는 12월 중순 솟기 시작, 한달 만에 2배를 상승하더니 4월 HBM 테스트 장비의 고객사 파일럿 테스트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퀀텀점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일일 거래량만 5000만주 안팎을 기록하면서 역대급 상승을 기록합니다. 6월 13일에는 역대 최고점인 2만2950원을 기록합니다. 시총 2조원에 근접한 수치(1조8830억원)를 보이면서 반도체 후공정 대장주로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다만 최근 미국 빅테크발 '증시 패닉'이 발발하면서 낙폭이 커진 상황입니다. 27일 현재 1만5000원을 선을 유지하고 있군요. 시가총액은 1조2300억원 수준입니다. 코스닥 41위 정도네요. 대장주의 길은 험난합니다.
◇Industry & Event 와이씨는 간판을 세 번 바꾼 회사입니다. 변천사 자체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사와 겹치죠.
1991년 고려요꼬가와(Yokogawa) 측정기 주식회사로 설립돼 2001년 요꼬가와인스트루먼트코리아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회사입니다. 2012년 와이아이케이로 변경했다가 올 3월 와이씨로 다시 변경합니다. 1933년 일본 ANDO전기 주식회사로 시작, 테스터 사업을 키워오다가 2012년 최명배 회장이 Yokogawa전기로부터 반도체 테스트 사업부문을 인수해 한국 기업이 됐습니다.
Yokogawa그룹은 1915년 도쿄에서 설립, 세계 60개국 130여개 사업 거점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입니다. 초기 일본 기술을 토대로 반도체의 씨앗을 뿌린 후 기술독립을 이뤄 일본을 압도한 한국 반도체사와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죠.
삼성전자의 웨이퍼 테스트 물량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캐시카우인 테스트 장비는 삼성전자 D램 라인의 EDS(Electrical Die Sorting)공정 단에서 전기적 검사를 수행하는 장비입니다. 매년 2000억원 중후반 대의 견조한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주가 급등을 견인한 이슈는 단연 HBM 테스트 장비의 양산 공급건입니다. 와이씨는 8월 초 삼성전자와 1017억원 가량의 '반도체 검사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11월 평택 P3 양산라인으로 입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개발에 착수해 올 5월 삼성전자 최종 퀄(품질인증)을 획득하고, 3개월 만에 정식 PO가 나온 셈이죠. 모델명은 'MT8311'이네요. 계약 공시가 뜨자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습니다.
신규 솔루션 MT8311은 D램 적층 구조인 HBM의 적층 패키지 이전 단층 상태의 웨이퍼 상태에서 개별 칩의 전기적 특성을 검사하는 장비입니다. 고대역폭 D램의 고속 EDS 테스트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국내 제조사 최초의 HBM 웨이퍼 테스트입니다.
◇Market View 와이씨를 조명한 증권사 리포트 중 가장 눈에 띄는 기관은 현대차증권입니다. 올 5월 말 박준영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와이씨를 두고 '한국의 어드반테스트(Advantest)'라고 표현하면서 장기적 성장성을 기대했습니다.
어드반테스트는 일본 굴지의 반도체 후공정 장비 제조사입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이면서 HBM 양산 라인에서 EDS 이후의 어드밴스드 패키징(ADV/PKG) 테스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HBM 후공정 시장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박 연구원은 해당 리포트에서 "고속(High Speed) 테스트 기능이 포함된 HBM용 웨이퍼 테스터를 제작할 수있는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유이한 업체 중 한 곳"이라며 "HBM 메이커 3사 중 HBM 라인의 증설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고객사로의 공급이 기대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와이씨가 개발한 HBM 테스터는 메모리 테스트 기능 중 구현하기 가장 어려운 기능인 High Speed Test 기능이 탑재된 통합 테스터(Burn In, Hot/Cold, High Speed)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어드반테스트가 유일합니다. 그 어려운 걸 이번에 와이씨가 해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와이씨의 눈은 어드반테스트로 향해 있습니다. 경쟁 상대로 주저하지 않고 어드반테스트를 꼽는 이유죠.
◇Keyman & Comments 와이씨의 키맨은 최명배 회장입니다. 최 회장은 1952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 이사, 삼성전자 상무를 지낸 '삼성맨' 출신입니다. 사실상 맨손에서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의 총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와이씨 휘하에 2개의 상장사(샘씨엔에스, 엑시콘)와 12개의 비상장사(샘텍 등)가 도열해 있습니다. 최 회장은 와이씨, 엑시콘, 샘툴스, 디에이치케이솔루션, 샘텍 등의 대표이사를 겸하면서 그룹사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인 장녀 최유진 씨가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군요.
더벨은 와이씨의 IR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 직원(김창욱 프로)과 통화를 나누고, HBM 테스터의 판로, 회사가 생각하는 적정가치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김 프로는 "올 상반기 주가가 급등한 모멘텀은 사실상 HBM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통해 착실하게 영업을 이어가는 회사라 느닷없는 주가 상승이 당혹스럽게 느껴질 법도 했습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밸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HBM 트렌드를 타고, 주가 붐업에 회사 내부 역량을 쏟고 있는 일부 상장사와는 결이 달라 보이네요.
와이씨의 화두는 판로 확장입니다. 삼성전자와 MT8311 공급 계약을 맺었지만, HBM 시장을 주도 하고 있는 SK하이닉스에도 공급하는 게 목표라는 설명입니다. SK하이닉스가 특정 고객사(테라다인)에 HBM 검사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벤더 확장 니즈를 파고들겠다는 입장입니다. 단, 이 경우 삼성과 맺은 JDA(공동개발협약)와 특허 등에 위배될 수 있으므로 고객사에 맞춰 장비 스펙을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습니다.
김 프로는 "올해 실적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소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HBM 관련 신규 계약 물량은 11월부터 고객사 인도가 시작되지만, 연말 인도가 지연되는 경향성을 감안하면 일부만 올해 매출액으로 산입되고, 내년으로 이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시장에 알려진 올해 매출 컨센서스가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