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업체가 왜 IT를 인수할까.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이 잇달아 IT 기업을 인수하며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100억원 안팎의 소규모 인수로 '디지털 고도화'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IT 인력을 내재화하는 건 기존 사업뿐 아니라 씨젠의 신사업 구상과도 연결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사 진단 노하우를 공유해 다양한 질병을 조기진단 한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백엔드 시스템 개발 '펜타웍스' 베팅, 대형유통사 파트너 눈길
씨젠이 올해 두 번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1월 브렉스에 이어 5개월 만에 펜타웍스 인수를 결정했다.
펜타웍스는 2015년 설립된 백엔드(back-end) 시스템 개발에 특화된 기업이다. 데이터베이스와 서버, 애플리케이션 등의 움직임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앞서 인수한 브렉스는 사용자가 직접 보는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경험(UX) 등 프론트엔드(front-end)를 기획하는 IT 업체였다. 백엔드와 프론트엔드 기술을 모두 내재화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인수금액은 비공개이나 브렉스와 비슷한 100억원 내외로 점쳐진다. 브렉스의 경우 씨젠이 지분 취득에 따른 인수대금 일부를 자기주식으로 지급하기 위해 19억7630만원 규모의 보통주 8만4632주를 처분했다.
씨젠은 연매출 42억원을 내는 브렉스 인수에 66억원을 베팅했다. 펜타웍스의 경우 사원수는 40여명, 매년 약 50억원의 매출을 낸다. 매출 규모를 감안할 때 인수대금 역시 엇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펜타웍스는 대형 유통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멤버스 등 롯데그룹과 다양한 협업을 했다. 특급기술자 6명, 고급기술자 14명 등 40명 중 37명이 전문 기술인력으로 구성됐다.
씨젠이 펜타웍스 인수를 결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펜트웍스가 소프트웨어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자체 플랫폼(AER/SSP)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경쟁 진단업체와 다른길, 기술공유 사업에 IT 활용
엔데믹을 맞은 진단업체들은 일제히 사업 다각화를 모색 중이다. 씨젠도 예외가 아니지만 다른 진단업체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해외 진단유통업체와 체외진단기기 기업를 사들였고 미코바이오메드는 바이오 전문기업을 인수했다. 엑세스바이오도 진단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싸이토젠에 수백억원을 베팅했다. 그러나 씨젠은 언뜻 보면 바이오와 거리가 있는 작은 IT 기업을 사들이는 소규모 M&A 행보를 보이고 있다.
씨젠이 다른 진단업체에 비해 현금이 부족한 곳도 아니다. 올해 3월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723억원이다. 그간 별다른 M&A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곳간이 거의 줄지 않았다.
자금여력과 별개로 씨젠은 내부적으로 확고히 세운 M&A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큰 규모 딜보다 작은 딜이더라도 시너지 창출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수년 전부터 씨젠은 분자진단의 자동화를 이끌 IT 인프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체 진단기술에 IT를 적용해 디지털 전환을 꾀한다. 올해 2건의 딜에서 내부 IT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신사업에도 적용할 IT 기술 내재화를 이루려는 목표가 엿보인다.
중장기 프로젝트로 내세운 기술공유사업에도 IT 인프라가 활용된다. 기술공유사업은 씨젠이 '질병 없는 세상'을 모토로 시작한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수십건의 과제에 씨젠이 분자진단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사업모델을 추구한다. 오는 2028년까지 100개 업체와 협력하겠다는 포부로 스프링거 네이처와 협력하고 있다. 스프링거 네이처는 세계 최고 권위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발행하는 곳이다.
BT와 IT를 융합해 신사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내실을 다지기 위한 작업이 올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IT 기술을 어느정도 갖춘 뒤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 모델을 짤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인력도 정비 중이다.
씨젠 관계자는 "고급 역량을 지닌 엔지니어 인재들을 확보함으로써 기존 사내 소프트웨어 고도화뿐 아니라 IT와 BT를 융합한 신사업, 나아가 중장기 프로젝트인 기술공유사업에도 시너지를 내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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