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흔히 이사회 운영 '모범생'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금융지주 이사회는 여러 대기업의 롤모델로 꼽힐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는다. 그에 반해 저축은행 이사회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대표이사의 장기 재임 사례가 많다. 상임이사 임기도 길어 사외이사의 견제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저축은행 이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SBI저축은행의 이사회에는 4개의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김문석 대표이사는 이사회 사내이사임에도 어떠한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사외이사가 모든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를 두고 사외이사진의 독립적인 견제·감시 기능을 보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위험관리위원회는 작년 저축은행업계 화두였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를 심도 깊게 논의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율협약 가입 여부를 놓고 수차례 재심의 회의를 개최하는 등 사외이사 개개인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위원회 의장, '전원' 사외이사…독립성·견제 기능 '강화'
SBI저축은행 이사회에는 △감사위원회(감사위) △위험관리위원회(위험관리위) △보수위원회(보수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등 4개의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눈여겨볼 점은 모든 위원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전문성과 배경을 갖춘 사외이사를 위원회 의장으로 선임해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높이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또한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을 때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인물을 임명해 균형과 견제를 도모한다. 작년 말 박성열 이사가 선임 사외이사로 낙점됐다.
감사위 의장은 박성열 이사다. 위원으로는 박재성 이사와 정인화 전 상근감사위원이다. 정 전 위원은 최근 임기 만료를 일주일 앞두고 사임했다. 신현준 이사는 위험관리위와 보수위 등 두 개의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신 이사는 재무부와 금융위원회 출신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위험관리위 위원으로는 박성열·김은미 이사가 활동하고 있다. 보수위 위원으로는 박재성 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인 모리타 슌페이 SBI홀딩스 전무가 속해 있다. 임추위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돼 있는데 의장에 김은미 이사, 위원에 신현준·박재성 이사가 포함됐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김문석 대표이사가 어떠한 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다는 것이다. 통상 대표이사는 최고경영책임자(CEO)로서 위원회에 속해 감사계획을 수립하거나 임직원 보수를 결정하고, 리스크 관리를 수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 대표는 어떠한 위원회에 속하지 않고 최고상설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멤버로서만 활동하고 있다. 반면 사내이사로 속하는 상근감사위원이 감사위에 속해 있다. 모리타 전무는 보수위에 속해 보수지급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위험관리위, '뜨거운 감자' 부동산PF 자율협약 재심의
이사회 내 위원회 역할은 개별 위원회별 특화된 안건을 논의해 전문성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런 취지와 다르게 기업이 준비한 안건에 찬성표만 행사하는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SBI저축은행의 위험관리위는 부동산PF 관련 안건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면서 위원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위험관리위는 모두 19차례 개최됐다. 이중 찬성 의결된 안건은 18개다. 이는 위원들 반대로 부결된 안건이 있었다는 의미다.
위험관리위의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작년 1월 17일 열린 회의에서 '저축은행 컨소시엄 PF대출 연착륙을 위한 자율 협약 가입의 건'이 사외이사 3인 전원 '보류' 의견으로 재심의 결정이 났다. 자세한 안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위원들이 일부 조항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같은 달 31일에는 'PF협약 조건부 가입 승인의 건'이 안건으로 다뤄졌다. 이후 작년 3월 22일에 열린 제5회 회의에선 '저축은행 PF협약 전면개정(안) 가입 승인의 건'이 상정됐다. 지난 1월 회의에서 조건부 가입을 승인한 이후 구체적인 개정안을 마련해 의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판사 출신 김은미 이사는 '조건부찬성' 의견을 내놓으며 △채권 개념 상제 △유효기간 설정 △채권 매수청구권의 자율협의체 승인 여부 결정 조항 신설을 승인 조건으로 걸었다. 금융위원회, 한국신용정보원 출신 경제 전문가인 신현준 이사는 법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지속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박성열 이사는 협약의 유효기간 명시를 강조했다.
SBI저축은행은 위험관리위에서 논의된 내용을 저축은행 PF대출 협의회에 전달했다. 작년 8월 말 열린 회의에선 개정안 동의와 보완의견 제출 안건이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위험관리위는 PF대출 자율협약 가입 안건을 두고 4~5차례에 논의를 거친 것으로 파악된다.
나아가 작년 9월 13일 열린 위험관리위 회의에선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저축은행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변경 가이드라인에 대해 한 차례 논의를 거쳤다. 사외이사 3인은 안건 의결을 보류하고 해당 안건을 이사회로 상향해 결의하는 것으로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