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동원산업이 보유한 자사주 전량 소각 결정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상한가 근처까지 치솟았습니다. 동원산업은 16일 전 거래일 대비 25.76%(8100원) 오른 3만955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3만원대에 머물던 동원산업 주가가 4만원까지 오른 건 지난해 8월 1일(종가 4만원) 이후 처음입니다.
자사주 약 3290억원어치 소각 결정 공시와 동시에 폭등했지만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습니다. 하루 만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상승분을 일부 반납한 상황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순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렸으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물량이 출회되고 있습니다. 16일 하루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85억원어치 사들였지만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각각 43억원, 21억원 팔아치웠습니다.
17일 장중에도 낙폭이 심했습니다. 개장 직후 8% 이상 빠졌지만 장 마감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2%대까지 하락폭을 줄이고 있습니다. 그간 동원산업 주가가 지지부진했던 만큼 자사주 소각 이벤트에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Industry & Event 동원산업 주가가 상한가까지 근접했던 건 주주가치 개선 기대감 덕분입니다. 상장사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는 많지만 소각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총 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주당 순이익이 올라갑니다. 시장에 풀릴 물량이 영원히 사라지면서 자사주 매입보다는 확실한 주가 부양책인 셈입니다.
동원산업은 지난 16일 이사회에서 자기주식 보통주 1046만770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전체 발행 주식의 약 22.5%에 해당하는 물량입니다. 전체 주식의 5분의 1을 소각하는 것입니다.
소각 예정 금액은 15일 종가 기준 약 3290억원입니다. 소각 기준일은 5월 2일로 주식 소각이 완료되면 발행주식 총수는 4648만2665주에서 3602만1895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번에 소각하기로 결정한 주식은 동원산업이 지난 2022년 11월 1일 동원산업이 동원엔터프라이즈 흡수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자기주과 합병을 반대한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한 자기주식입니다.
앞서 동원산업은 지난해 8월 전체 발행주식 수의 7% 규모인 자사주 350만주를 소각하고 남은 주식을 오는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초 5년에 걸처 소각하기로 했지만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동원산업이 화끈한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 당시 합병 비율을 1대 3.8385530로 산정했습니다. 일부 동원산업 주주들은 합병 비율을 두고 동원엔터프라이즈에 비해 동원산업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불리한 방향으로 비율을 정했다는 논란이 커지면서 승계 목적의 합병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상장사인 동원산업 가치가 9156억원인데 반해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 가치는 2조원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원산업은 합병 과정에서 자사수 소각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4월 약 397억원의 배당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Market View 증권가에서도 동원산업의 주주 환원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지주사인 탓에 다양한 증권사에서 동원산업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실적 코멘트를 포함해 동원산업 리포트를 낸 증권사는 흥국증권과 메리츠증권 두 곳입니다.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이후로 신규 리포트는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흥국증권은 '주주환원의 길라잡이', '주주환원과 재평가(달도 차면 기운다)' 등의 리포트로 동원산업의 자사주 소각과 신사업 집중 육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흥국증권은 지난해 7월 4일 동원산업 목표 주가로 5만5000원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우려도 있습니다. 동원산업 지배구조가 탄탄해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것은 장점이지만 블록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최대주주 등 특수관계자와 자사주의 동원산업 지분율은 91.14%입니다. 최대주주가 지분을 희석하더라도 무리가 없는 구조입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동원산업 자사주 소각(감자소각)이 완료되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오르게 된다. 유통 주식 수가 적어서 시장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오면 최대주주의 지분을 롱텀펀드 성격의 국내외 기관에 블록딜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Keyman &Comments 동원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백관영 상무입니다. 동원산업이 지난해 지주사로 거듭난 이후 백 상무의 역할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는 순혈 '동원맨'으로 동원그룹을 대표하는 재무통 중 한 명입니다. 2024년 정기 인사에서 경영지원실장에서 상무로 승진했습니다.
동원산업 사업보고서를 포함해 이번 자사주 소각 공시에는 작성 책임자인 백 상무에게 바로 연결되는 직통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전날 주가가 폭등하면서 장 마감 전인 세 시 십분께 전화를 걸었지만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후 이날 오전 여덟시 오십 분에 통화해 자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백 상무는 5년에 걸쳐 정리하려던 자사주 소각이 한 번에 이뤄진 것에 대해 "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는 꾸준히 지난해 8월 이후 동원산업이 나머지 지분에 대해 어떻게 소각할 것인지 궁금증이 있어 왔기에 이를 해결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동원산업이 HMM 인수에 관심을 보일 때부터 등장하던 최대주주와 주요 계열사 블록딜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당시 동원그룹이 HMM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블록딜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습니다.
백 상무는 최대주주 블록딜 가능성에 대해 "향후 어느 정도 검토할 수는 있다"면서도 "M&A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아도 현금 등 자금이 넉넉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원그룹의 기업형 밴처캐피탈인 동원기술투자를 통한 신사업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동원기술투자와 가지고 있는 현금 등으로 신사업과 M&A를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