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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헤지펀드슬기자산운용

트러스톤 실력자들이 뭉쳤다…롱온리 조용한 강호

3인 대표매니저 공동 창업, 누적수익 100% 웃돌아

윤기쁨 기자  2024-01-17 06:46:09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2019년 사모펀드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환경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운용사가 있다. 바로 슬기자산운용이다. 국내와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롱바이어스드(Long biased) 전략으로 업계에 조용하고도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슬기자산운용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을 이끌었던 핵심 펀드매니저 3인이 나와 공동 설립한 회사다. 1980년대 초반생인 이들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세운 만큼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하우스다. 이는 전효준 대표와 종업원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주주와 운용역이 모든 펀드에 출자하며 책임 운용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강한 주식’에 집중한다. 가치주와 성장주와 같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구조적 성장 △초과 수요상태 △턴어라운드 △펀더멘털 △성장성 등을 고루 갖춘 종목에 집중한다. 수차례 검증을 거친 강한 주식들은 안정적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트러스톤이 맺어준 인연…독립으로 '의기투합'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 운용역인 전효준 대표, 송근용 최고투자책임자(CIO), 이태경 운용팀장은 트로스톤자산운용에서 인연을 맺었다. 다수의 펀드를 운용하며 경험을 쌓은 이들은 함께 독립의 꿈을 꿈꿨다. 퇴사 시기는 모두 달랐지만 창업을 결심하고 회사 출범에 앞서 개인 투자와 학업(MBA)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약 3년의 시간이 흐르고 2019년 6월 마침내 슬기자산운용이 탄생했다.

전효준 대표는 성균관대학교 산업공학과, 포항공과대학교 기술경영 석사 출신으로 투자와는 거리가 먼 공부를 해왔다.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전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여러 기업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는다. 우연히 들어간 기보캐피탈(현 아주IB투자)와 KTB투자증권(현 다올투자증권) 등에서 인턴을 거치면서 투자업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펀드매니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년 3개월동안 순자산 규모 1조2000억원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롱숏’와 3000억원인 ‘트러스톤밸류웨이’ 등을 굴리며 간판 매니저로 성장했다.

송근용 CIO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첫 직장으로 삼성물산에 들어가 건설 관련 업무를 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식이 좋다는 이유로 CFA(투자전문가) 자격증을 획득한 후 자문사에 입사하며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국민연금 배당주형 펀드’, ‘트러스톤밸류웨이’ 등을 운용했다. 국민연금의 대형 자금을 맡으며 운용 경력을 쌓았다. 송 CIO는 유명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 ‘농구천재’라는 필명으로 종목분석과 투자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태경 운용팀장도 마찬가지로 서울대학교 중문학사를 전공한 비전공자다. 다만 서울대학교 주식동아리 ‘SMIC(스믹)’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케이원투자자문을 거쳐 트러스톤자산운용에 합류했다. 3년 2개월간 ‘국민연금 중소형주 펀드’를 운용하는 한편 싱가포르 법인으로 넘어가 해외 시장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을 졸업해 미래에셋증권, 다올투자증권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이환희 부사장, 교보증권 상품개발·사모펀드 운용부서를 거친 이미연 준법감시인이 회사 설립과 동시에 합류해 오랜 기간 함께하고 있다. 이환희 부사장과 이미연 준법감시인은 백오피스를 맡고 있다.

3인 대표 펀드매니저 이외 운용역으로는 박찬범 애널리스트가 지난해 초 합류했다. 박 애널리스트 역시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를 졸업한 비전공자지만 교내 투자동아리 SRS에서 투자 경험을 쌓았다. 펀드 운용에도 참여하며 높은 수익률을 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출범 직후 맞이한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바꿔

첫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라임 사태 등으로 헤지펀드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9년 12월 자산운용사 영업을 개시하고 준비 과정을 거쳐 최초로 슬기자산운용 이름을 건 펀드를 출시했다. 그러나 한달 만에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증시는 추락했고, 첫 펀드인 ‘슬기멀티일반사모증권’ 수익률은 이듬해 2월 -30%까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시련은 전화위복으로 극복했다. 위기를 좋은 주식을 솎아내는 기회로 삼고 버티기 국면에 들어섰다. 주식 비중은 줄이지 않되 강한 종목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주가가 더 하락하면 일부 주식은 추가 매입도 했다. 이는 곧 수익률로 증명했다. 2020년 연방준비위원회(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로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는 손실폭을 모두 만회하고 30억원의 순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슬기자산운용은 중장기 복리수익을 추구한다. 투자기간이나 규모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펀드를 운용한다. 이들은 수익의 원천이 ‘강한 기업’과 ‘적정기간’에 있다고 믿는다.

미국의 경우 세계적으로 큰 금융투자시장이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혜택도 많고 지배구조도 명확해 장기 투자가 가능한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내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장기 투자에 적절한 시장이 아니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맹목적인 가치 투자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회사가 강해졌을 때 일정 기간 투자에 나서는 전략이다.

국내는 물론 미국·중국 등 해외 주식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강한’ 해외 종목을 발굴해 차별화를 두고 높은 초과수익을 거둔다는 구상이다. 외국환업무취급 기관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해외주식 매매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도 구축한 상태다.

실제 3인 대표 매니저들이 글로벌 산업과 종목 분석에 특화돼 있다. 전효준 대표와 송근용 CIO는 북경대학교 EMBA와 서울대학교 MBA를 수료하고, 이태경 매니저도 나고야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여기에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해외 법인인 싱가포르 지점에서 근무하며 해외 시장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롱바이어스드 강호, '슬기멀티' 누적수익율 100%대 웃돌아

슬기자산운용 수탁고는 초기 100억원에서 현재 1120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펀드는 멀티매니저 시스템으로 3인 대표 매니저들이 공동 운용하는 형태다. 펀드 자금에 회사 고유계정도 활용하는 등 책임 운용 원칙을 추구한다. 초기 투자자들은 슬기자산운용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내며 계속해서 자금을 맡기고 있다.

대표 펀드인 ‘슬기멀티일반사모증권’의 최근 일년 수익률은 21%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설정 이후 수익률은 139%를 기록하고 있다. ‘슬기멀티일반사모증권’는 구조적 성장이 예상되거나 국내·해외 저평가 기업(비상장 포함)에 투자한다.

롱바이어스드를 기본 전략으로 하되 시장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숏(Short)전략도 병행하는 상품이다. ‘슬기멀티일반사모증권 2~3호’ 개별 펀드들도 국내외 상장주, 비상장 주식 등의 비중을 달리해 운용하고 있다.

주전략 펀드 이외에도 시장 트렌드에 따라 출시한 공모주·코스닥벤처 펀드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슬기공모주하이일드일반사모증권’(90%), ‘슬기공모주일반사모증권’(누적수익률 73%), ‘슬기코스닥벤처일반사모증권’(78%) 등이 대표적이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10% 내외를 비상장 주식으로 채우고 있다. 공모주 펀드의 경우 4년 연속 손실 없이 매년 수익을 거두는 효자 상품이다.

향후 슬기자산운용은 상장사는 물론 스타트업과 해외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더욱 늘려갈 전망이다. 현재 자금의 흐름이 스타트업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벤처캐피탈 시장에서 할인된 세컨더리 물량이 대량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슬기자산운용은 밸류에이션 50억~100억, 시리즈 A 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스타트업과 미국 혁신기업으로 범위를 확장해 강한 기업 선별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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