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레버리지 지표와 커버리지 지표를 함께 봐야 한다. 전자는 '빚의 규모와 질'을 보여준다. 자산에서 부채와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롯해 부채 내 차입금의 비중과 형태 등이 나타난다. 후자는 '빚을 갚을 능력'을 보여준다.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을 통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THE CFO가 레버리지 지표와 커버리지 지표를 통해 기업의 재무 상황을 진단한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을 기점으로 자본적지출(CAPEX)을 포함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그러나 투자 확대 시점이 석유화학 불황기와 맞물리면서 실적에 기반을 둔 투자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안정적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외부 조달을 늘려 대응하고 있으나 반대급부로 이자부담이 확연히 무거워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1~3분기 누적 연결기준으로 이자비용이 266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195%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4분기를 더한 총 이자비용은 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2022년의 2배 수준이다.
롯데케미칼의 이자비용 지출은 2019년 1132억원에서 2021년 852억원까지 2년간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2022년 1499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늘어난 뒤 지난해 증가 폭이 더욱 커졌다. 총차입금이 2021년 3조6658억원에서 2022년 6조3247억원,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9조6398억원으로 계속해서 불어난 영향이다.
2022년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석화단지 구축사업(라인 프로젝트)이나 GS에너지와의 화학 합작사 설립(롯데GS화학) 등 다양한 투자를 동시에 진행했다. 여기에 같은 해 5월에는 이차전지소재나 수소 등 신사업 육성에 2030년까지 1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으며 투자 확대를 본격화했다.
그 결과 롯데케미칼은 순유형자산 기준 CAPEX 집행이 2021년 7733억원에서 2022년 2조5926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3분기까지의 집행금액만 2조5007억원에 이르는 데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2조7000억원을 별도로 투입하는 등 지출이 늘어만 갔다.
문제는 투자 확대가 본격화된 2022년이 석화업계 불황의 시작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 해 롯데케미칼은 영업손실 7626억원을 내며 창사 이래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누적 751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수 조 단위로 투자를 늘린 이 기간에 롯데케미칼이 영업에서 창출한 현금흐름은 6898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금성자산 보유량(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과 단기금융상품의 합계)은 2021년 말 3조3023억원에서 작년 3분기 말 4조4590억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투자재원의 상당 부분을 영업이 아닌 외부 차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롯데케미칼의 차입 확대가 당장의 재무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부채비율은 64%에 불과하며 차입금의존도는 29%다. 안정적 기업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부채비율 200%, 차입금의존도 30% 이하를 동시에 충족한다.
그러나 과거 대비 이자지급능력이 크게 약해진 점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롯데케미칼은 이자비용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배율이 2021년 27.8배에 이르렀으나 작년 3분기 기준으로는 이 지표가 2.8배까지 낮아졌다. 2022년에는 1.2배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석유화학 불황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변동에 기반을 둔 수익성의 변수는 있으나 글로벌 경기침체로 둔화한 소비재 수요의 회복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화학시장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소재 중심의 대규모 생산설비 증설 역시 계속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도 큰 폭의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주력사업의 투자를 미루거나 축소하는 등 차입 부담 완화를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