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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성공 루닛, 이제는 검증의 시간 돌입

디스카운트 밸류로 입성→2800억 유증+텐베거까지… 넥스트 모멘텀은 '바이오마커'

최은수 기자  2023-10-06 15:16:30

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루닛은 근래 바이오·헬스케어 섹터에서 단연 주목도가 가장 높은 기대주입니다. 2022년 상장한 지 1년 만에 무상증자를 곁들인 유상증자를 결정했고, 2019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간 전후로 주가가 치솟으며 단숨에 텐베거(수익률 10배 종목)로 올라섰죠.

작년 7월 루닛이 코스닥에 입성할 때만 해도 이같은 반등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오·헬스케어 IPO 시장이 극도로 침체됐던 시장 분위기를 고려해 대폭 디스카운트한 기업가치로 일단 코스닥에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루닛이 받아든 최종 공모가액은 주당 3만원. 당초 제시했던 공모 밴드(4만4000원~4만9000원) 하단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공모주식을 포함한 3637억원의 시가총액은 2021년 11월 720억원 규모의 프리IPO 당시 투자 전 기업가치(프리밸류, 4080억원)대비 20% 적었습니다.

*루닛의 주가 추이

루닛의 결단은 이제 와선 당시 바이오·헬스케어 벤처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현재를 투자해 미래를 사는 바이오, 그리고 헬스케어 섹터 주목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루닛은 이 불리한 국면에서 과감하게 살(밸류에이션)을 내주며 일단 코스닥에 입성합니다. 그렇다면 상장 과정에서 계획과 달리 적잖은 출혈을 감내한 루닛이 뼈를 취하기 위해 꺼내든 히든카드는 무엇이었을까요?

◇Industry & Event

바로 상장 1년만에 단행한 '유상증자'입니다. 루닛은 구주 1주당 약 0.15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와 함께 총 2019억원을 조달하는 주주배정유상증자 계획을 알립니다. 제품 고도화, 해외 사업,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을 설립해 글로벌 의료 AI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죠.

루닛의 유상증자 계획은 시장에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 흔한 바이오·헬스케어의 '허수'에 가까운 자금조달 및 사용 계획과는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루닛의 자금 조달은 현재의 '실적'과 '성장'에 근거한 조달로 해석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장 첫해 루닛의 매출액은 138억원, 규모는 적으나 2021년(66억원)의 두배가 넘는 수치를 보입니다.

루닛의 유상증자 발표 후 주가가 급등한 것도 이번 유상증자가 결과적으로 기업가치 증대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CVC 설립에 900억원을 출자한다는 과감한 계획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의료AI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루닛을 중심으로 얼라이언스가 구축되며 밸류체인을 완성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게 만들었습니다.

루닛은 2배의 매출 증대를 달성했지만 턴어라운드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국에 바이오·헬스케어 벤처가 매출을 냈다니!" 이미 루닛을 안중에 두지 않던 투자자들의 괄목상대와 재평가를 이끌기엔 충분했죠. 루닛은 올해 상반기에도 눈분신 매출 증가세(YoY +199.7%)를 보인 결과 시가총액은 2조원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산업과 투자자 양쪽에서 모두 지지를 받은 결과 루닛은 1차 유상증자 발행가액을 기존 목표 모집액(10만8700원) 대비 40% 높은 가격(15만3500원)으로 확정합니다. 조달액은 약 2020억원에서 2850억원으로 뛰었습니다. 이는 몸값을 낮춰 코스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줄어든 IPO 공모 자금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Market View

그랬던 루닛이 이달 들어 본격적인 조정기를 맞았습니다. 순식간에 텐베거로 떠오른 루닛에 쏟아진 기대감이 점차 이 원대한 계획을 현실로 시현할 수 있느냐는 냉철한 '검증'의 눈빛으로 바뀌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시장에선 지금까지의 루닛의 코스닥 상장부터 대규모 유증의 사건을 일종의 '쇼케이스', 즉 '컨벤션 효과'에 가깝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업계와 시장이 함께 꼽았던 대표 섹터 기대주가 스스로 몸값까지 낮추며 상장을 위한 시장친화 전략을 펼치며 이 효과가 극대화됐다는 평가죠.

한때 27만원에 달했던 주가는 권리락 등이 겹치며 10만원 중반으로 회귀했습니다. 일면 하락세가 커 보이지만 권리락을 반영하면 올해 상·하반기에 연이어 나온 IB업계의 목표 주가(맥쿼리증권 21만5000원, DS투자증권 20만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IB업계의 컨센서스에 이미 도달한 만큼 이제부턴 루닛 스스로 상장 과정에서 제시했던 성장 기대치를 지속적으로 입증해 나가는 게 과제로 꼽힙니다. 가깝게는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제시했던 매출 청사진을 얼마나 근접하게 시현하는 지가 이 과제를 풀기 위한 첫 단추이자 시금석으로 보입니다.

◇Keyman & Comments
총 여섯 명의 공동창업자 가운데 누구도 이탈없이 10년째 근속 중인 점은 루닛의 '맨파워'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각각 백승욱 이사회 의장, 유동근 CRO(인공지능), 이정인 인허가 총괄, 박승균 CPO(영상의학 제품총괄), 팽경현 CPO(종양학 제품 총괄), 장민홍 CBO(영상의학 사업기획 총괄) 등이 주요 보직에 자리하고 있다다.

앞서 6인의 창업주와 함께 경영과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서범석 대표(사진)가 루닛의 향배를 가를 키맨으로 꼽힙니다. 이는 루닛의 사업 구조가 해외를 지향하는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루닛은 일찌감치 해외 파트너사를 통해 수출 사업을 펼쳐 왔고 매출 성장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시장이 좁은 국내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매출 구조를 구축한 건 긍정 요인으로 꼽힙니다. 세부적으로 루닛은 전체 매출의 90%가 해외서 발생합니다. 특히 GE헬스케어·필립스·후지필름·홀로직·가던트헬스 등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은 점은 뷰노를 비롯해 AI 기반 영상의료 피어그룹과 결이 다른 포트폴리오를 꾸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서 대표가 전문의(MD)라는 점도 향후 루닛의 사업 영역이 현재 주목을 받는 영상 의료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으로 이어집니다. 서 대표의 입을 통해 직접 강조한 루닛의 밸류업은 단연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발굴을 통한 '맞춤형 항암 치료'로 귀결됩니다. 서 대표가 "암 치료의 대세로 자리 잡은 면역항암제와 관련한 AI 바이오마커 연구로 루닛 스코프가 종양미세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보다 다양한 암종에 사용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서 대표가 제시하는 바이오마커 시장 역시 엄밀히 말하면 '미래 사업'입니다. 불확실성이 날로 가중하는 상황에서 루닛 또한 지속적으로 실체를 입증하는 것을 과제로 부여받을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루닛의 매출액(별도)은 164억원입니다. 상장 초기 바이오·헬스케어 벤처로는 적지 않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루닛이 상장과정에서 제시했던 올해의 전체 예상 매출액(510억원)과 비교하면 격차가 있습니다.

루닛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2024년엔 1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액과 턴어라운드(흑자전환)를 낼 것이라 공개했습니다. 루닛이 제시하는 미래 사업과 상장 과정에서 제시한 매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지는 겸손한 새내기에서 바이오·헬스케어 톱픽으로 떠오른 루닛을 둘러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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