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의 해외법인은 국내로 돈을 송금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본사에 손 벌릴 생각하지 말라"며 해외법인의 독자생존을 강조했던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경영철학이 역으로 묻어난 것이다. 과거 ㈜오리온이 내수 침체로 쪼들리던 상황에서도 해외법인의 지원은 없었다.
국내 기업이 해외법인의 자금을 들여오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배당'이다. 하지만 세금 이슈로 인해 배당수령 카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오리온의 이런 경영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됐는데 세법 개정과 함께 베트남 법인이 첫 본사 배당에 나섰기 때문이다.
◇베트남법인, 본사 배당 물꼬 텄다 ㈜오리온은 현재 홍콩(PAN Orion Corp. Limited), 러시아(Orion International Euro LLC.), 베트남(Orion Food VINA Co., Ltd.), 인도(Orion Nutritionals Private Ltd.), 미국(Orion F&B US, Inc.) 등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오리온이 보유한 지분은 홍콩법인 95.15%, 러시아법인 73.27%, 베트남법인 100%, 인도법인 100%다.
중국법인은 총 4곳으로 홍콩법인이 이들의 상위 지배기업이다. 중국 상하이, 광저우, 선양 등에 자리하고 있다. 홍콩법인이 중국법인들의 해외지주회사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들 해외법인이 국내 본사에 배당은 한 사례는 없다. 최근 베트남법인이 총액 1100억원을 송금한 게 첫 사례다. ㈜오리온은 8월 말 베트남법인으로부터 500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했으며 이달 중 600억원의 배당금을 추가로 수령할 계획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베트남법인 배당 관련해 해외에서 배당으로 현금을 들여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뿌리 내린 현지 법인 해외법인이 그동안 국내에 배당을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재무를 살펴보면 실적 부진은 이유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오리오의 해외법인은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법인의 지주사 격인 홍콩법인의 당기순이익은 모회사를 제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올 상반기 홍콩법인은 2786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오리온보다 약 4.6배 규모다.
이 기간 ㈜오리온은 598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홍콩법인의 순익은 중국법인의 배당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중국법인이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러시아법인이 126억원, 베트남법인이 32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다만 미국법인과 인도법인은 각각 9000만원, 7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인도의 경우 2021년 설립된 곳으로 인도 라자스탄에 공장을 새롭게 준공 및 가동을 시작했다.
해외법인이 국내로 돈을 송금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경영 방식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현지에서 벌어들인 돈을 국내 모회사로 송금하지 않고, 재투자 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담 회장의 경영 철학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담 회장은 중국사업 진출 당시 주재원들에게 "현지에 뼈를 묻어라. 본사에 손 벌릴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알려진다.
㈜오리온의 해외법인은 이미 현지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해외법인 인력의 80% 이상이 현지인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생산공장 역시 현지에 위치해 있다. 이 외에 해외법인이 국내 모회사로 배당할 경우 생기는 과세부담도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세법 개정, 경영기조 바뀌나 그러나 올해부터 해외법인 배당과 관련한 세법이 개정되며 ㈜오리온의 경영 기조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법 개정 이전에는 해외에 법인을 둔 모기업은 사실상 법인세를 중복해서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제는 해외법인이 국내 모기업에 보내는 배당금에 대한 비과세율(익금불산입률)이 95%로 규정되며 그 전의 이중과세 구조가 대폭 완화됐다. 해외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의 5% 정도만 법인세를 부과해 세율이 낮아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법이 개정되면서 ㈜오리온의 해외법인 중 가장 높은 매출 성장세를 보였던 베트남법인을 필두로 배당금 관련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00억원 이상 순익을 기록해 배당 여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홍콩법인은 중국법인의 지주사인 만큼, 지주사가 ㈜오리온에 배당하는 형태보다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베트남법인이 첫 시작으로 낙점됐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