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레버리지 지표와 커버리지 지표를 함께 봐야 한다. 전자는 '빚의 규모와 질'을 보여준다. 자산에서 부채와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롯해 부채 내 차입금의 비중과 형태 등이 나타난다. 후자는 '빚을 갚을 능력'을 보여준다.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을 통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THE CFO가 레버리지 지표와 커버리지 지표를 통해 기업의 재무 상황을 진단한다.
이차전지 소재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천보가 지난해 메자닌 발행으로 비교적 대규모인 3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부채관리에 힘써온 덕분이다. 기업공개(IPO) 흥행으로 자본확충에 성공한 천보는 이후 우수한 영업활동현금흐름과 자사주 처분대금을 바탕으로 사실상 무차입경영을 이어왔다.
메자닌 발행 이후에는 조달금액 일부를 전환권대가로 분류해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반영하는 회계상 기법을 이용해 부채비율 급등을 통제했다.
◇IPO 자본확충 '신의 한 수'…2차전지소재 앞세워 흥행 성공
천보는 최근 발행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회사는 아니었다. 2019년 2월 IPO 흥행에 성공하면서 발행총액 1000억원 중 구주매출분을 제외한 신주모집분 800억원을 자본으로 확충했기 때문이다. IPO 성공은 현재까지도 천보가 탄탄한 재무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무엇보다 천보는 우수한 현금흐름이 바탕이 되고 있다. 천보는 2007년 10월 설립됐는데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이 12월로 결산기를 변경한 2013년부터 지난해(-6억원)를 제외한 2021년까지 당기순이익이 매년 흑자를 기록했으며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경우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흑자를 달성했다.
이 때문에 IPO 이전에도 천보의 재무건전성은 크게 우수했다. 2018년말 자본총계가 1064억원인 반면 부채총계는 123억원에 불과해 부채비율(부채총계/자본총계)이 11.6%에 머물렀다. 현금성자산이 131억원으로 여유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이 31억원에 불과했다.
IPO에 성공한 직후인 2019년말 재무건전성은 더 강화됐다. IPO에 따른 자본확대에 당기순이익까지 겹치면서 자본총계가 2019억원으로 뛴 반면 부채총계는 90억원으로 축소되면서 부채비율이 4.5%까지 하락했다. 총차입금은 2억원으로 사실상 없어졌고 대신 855억원에 이르는 현금성자산을 갖추게 됐다.
천보가 IPO에 흥행한 데는 2차전지 전해액 첨가제와 전해질로 사업중심을 성공적으로 이동한 영향이 컸다. 천보는 2013년 2차전지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을 시작해 SN, DPN, AN 등 전해액 첨가제를 생산하고 있다. 2016년 중대형 리튬전지용 전해질(LiFSI) 상용화 공장을 가동했으며 2018년 차세대 전해질(LiPO2F2·LiBOB) 공장을 준공해 가동하고 있다.
천보는 이차전지 소재부문 외에도 LCD 식각액 첨가제 중심의 전자소재부문, 유리강화제 중심의 정밀화학소재부문, 의약품 중간체 중심의 의약품소재부문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보면 이차전지소재부문 매출액이 2306억원으로 전체 매출액(3289억원)의 70.1%를 차지해 핵심사업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3000억 메자닌 발행에도 재무건전성 여유…일부 자본반영으로 부채비율 상쇄
천보가 IPO 이후 또 한 번 대규모 자금조달에 나선 것은 지난해 2월이다. 다수 전문사모펀드와 투자조합을 대상으로 25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동시에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을 대상으로 50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천보는 총액 3000억원 규모 메자닌 조달의 목적이 자회사 천보비엘에스의 새만금산업단지 내 시설투자 지원이라고 명시했다.
천보는 대규모 차입을 일으킬 충분한 여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IPO로 대규모 자본확충에 성공한 이후 별도 기준 총차입금이 2020년말 3억원, 2021년말 5억원 등 2021년까지만 해도 사실상 무차입경영을 이어왔다. 부채비율도 2020년말 3.4%, 2021년말 6.2% 등 크게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 기간 EBITDA도 매년 200억원을 웃돌았으며 특히 2021년 9월 262억원 규모 자사주를 처분해 현금흐름을 보강하기도 했다.
메자닌 조달 이후 지난해말 천보의 총차입금은 2548억원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리스부채(2억원)를 제외하면 모두 CB(2122억원)와 BW(424억원)였다. 이 때문에 부채비율이 116.3%로 급등했다. 여전히 부채비율이 100%를 소폭 웃돌아 위험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CB와 BW 합산 3000억원 발행에도 2546억원만 총차입금에 반영된 이유는 천보가 일부를 전환권대가(전환권옵션) 명목으로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천보는 CB 전환권대가 194억원과 BW 전환권대가 39억원을 자본잉여금에 포함시켰다. 이는 전환권대가로 분류되는 CB 자본요소(245억원)와 BW 자본요소(49억원)에서 합산 법인세비용(62억원)을 제외한 수치다.
이 때문에 2021년말 1023억원이었던 자본잉여금이 지난해말 125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6억원의 당기순손실에도 자본총계가 같은 기간 2376억원에서 2578억원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메자닌 조달금액 일부를 자본으로 돌려 부채비율 급등을 상쇄하는 회계상 기법을 발휘한 셈이다.
천보는 사업보고서상에 "자본으로 분류된 전환권옵션은 전환권옵션이 행사될 때까지 자본에 남아있으며 전환권옵션이 행사되는 경우 자본으로 인식한 금액은 주식발행초과금으로 대체하고 있다"며 "전환사채의 만기까지 전환권옵션이 행사되지 않는 경우 자본으로 인식한 금액은 기타불입자본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