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빚이 3배 이상 급증했다. 롯데건설 지원을 위해 대규모 기업어음을 발행하면서 단기차입금이 늘어난 탓이다. 운영자금이나 설비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융기관에서 일으킨 빚도 상당하다.
글로벌 시황이 '초호황기'에서 얻은 빚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은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석유화학업계에 이례적인 불황이 찾아온 때다. 회사로는 76% 넘게 늘어난 이자 비용도, 마이너스로 전환된 영업현금흐름도 모두 근심거리다.
◇이자 비용 76% 급증지난해 말 연결 기준으로 롯데케미칼의 총차입금은 6조3247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이 중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은 총차입금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인 약 3조435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년(1조원)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단기차입금이 급증한 원인은 롯데건설 지원을 위해 회사가 대규모 단기차입을 일으킨 데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롯데건설에 6000억원을 빌려준 바 있다.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는 기업어음(CP) 8000억원을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서도 단기차입금 확충에 손을 댔다. 국민은행에서 원화차입 4000억원을 일으켰고 장기차입처인 미즈호은행에서도 1200억원을 단기로 빌렸다. 산업은행과 BBVA로부터도 단기차입 목적으로 각각 1조원, 1200억원을 빌렸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금리 상승기와 맞물렸다는 점이다. 예컨대 2년 전 산업은행에서 빌린 수입자금 이자율은 3개월 리보(3M Libor)에 0.33%~0.35%를 가산한 수준이었다가 작년 말 0.35%~0.90%까지 금리가 올라갔다. 기업어음의 이자율은 6.50%에 달한다.
조달 금리가 높아지면서 결과적으로 롯데케미칼이 금융기관에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도 급증했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연결 기준 차입금 이자 비용으로 15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850억원)에 비해 약 76%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당분간 타이트한 재무관리 예상단기차입금은 통상 만기가 1년 이내다. 회사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원활한 현금을 벌어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의 경우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실제 지난해 회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데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등 운전자본 부담이 높아지면서 현금흐름도 심각하게 악화됐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마이너스(-)1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전환된 것이다.
물론 당장 유동성 위기를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재무 정책이 보수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의 부채비율은 40~50% 안팎을 수년간 유지해 왔고 지금도 현금성자산이 3조7000억원에 달해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이미 대규모 현금이 유출된 상태다. 이에 더해 향후 3년간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건설 사업(LINE 프로젝트)으로 39억달러(5조1000억원)가 현지에서 소요될 전망이다.
관건은 회사가 영업현금흐름을 어느 정도로 개선할 수 있느냐다. 다행인 건 최근 석유화학 업계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289달러)가 다시 손익분기점(300달러)에 가까워지며, 업계 시황이 바닥을 지났다는 분석이다.
올해 1분기까진 영업손실(-140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지만 향후 시황 흐름에 따른 수익성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당분간 대외 환경을 지켜보며 자본적지출(CAPEX)을 조절하는 등 타이트한 재무관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