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한화솔루션은 국내 다른 석유화학 사업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양한 사업구조를 보유했다. 기초소재(화학물질), 가공소재(플라스틱), 신재생에너지 등 기존 케미칼·큐셀(태양광) 사업뿐 아니라 2021년 한화갤러리아를 흡수합병하며 리테일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었다.
지난 1일 한화갤러리아의 재분할로 리테일 사업이 떨어져 나갔지만 지난해까지 이어진 이러한 다양한 사업구조 탓에 한화솔루션의 재고자산에는 여러 사업이 혼재돼 반영됐다. 다만 재고자산을 사업별로 분리해 살펴보면 각 사업의 시장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 속에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상품·원재료·재공품(제조과정에 있는 물품)·미착품(주문했으나 도착하지 않은 원료) 등 주요 항목이 급증하며 재고자산이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지난해 불황기에 접어들었던 기초소재 부문의 경우 재고자산 규모 자체가 크게 늘진 않았으나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확대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재생 사업 확대, 재고자산 2년 연속 8000억 증가
한화솔루션의 재고자산은 최근 2년 동안 매년 8000억원씩 증가했다. 2018~2020년 3년 연속 1조4000억원대 수준이던 재고자산은 2021년 2조2315억원으로 전년 대비 56% 증가한 8000억원 늘었고 지난해(3조601억원)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전체 재고자산 증가를 이끈 사업은 지난해 호황기에 접어든 신재생에너지 부문이다. 2021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신재생에너지 부문 재고자산은 지난해에도 1조원 이상 늘어난 2조2657억원이었다. 연결조정을 거치며 일부 규모가 축소되긴 했지만 신재생에너지 사업부만 놓고 보면 한화솔루션 전체보다 재고자산 증가 수치가 더 큰 셈이다.
재고가 쌓여 재고자산이 불어나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호황기에 접어든 시장의 경우 다르다. 선제적으로 재고자산을 확보해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화솔루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에너지 대란으로 태양광 사업이 크게 관심을 받으며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에 태양광 밸류체인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등 사업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재고자산 항목별로 뜯어보면 상품, 원재료, 재공품 등 주요 항목의 재고자산 수치가 급증했다. 특히 상품 재고자산(7629억원)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변동폭 크지 않은 기초소재 부문, 아쉬운 평가손실액
한화솔루션의 전체 재고자산을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이끄는 동안 석유화학 중심의 기초소재 사업의 재고자산은 크게 늘지 않았다. 석유화학 업계가 높은 재고자산 물량에 고전하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기초소재 사업의 재고자산은 58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늘었다. 2021년 재고자산(5126억원)이 직전해 대비 56%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율 자체는 높지 않다. 다만 세부적으로 지난해 재고자산 원재료 항목(1333억원)이 전년 대비 73%나 늘어난 것은 옥에 티다.
이와 함께 아쉬움이 남는 점은 기초소재 부문의 재고자산평가손실이 급증한 것이다. 재고자산평가손실은 재고자산을 기말 하락한 가격 기준으로 평가하는 항목으로, 연결포괄손익계산서 상에 매출원가에 반영되며 수익성 악화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초소재 사업의 재고자산평가손실은 2019년 258억원을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100억원 이하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4배가량 증가한 305억원을 기록하며 최근 5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신재생에너지 부문 재고자산평가손실의 경우 2021년 554억원에서 지난해 12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매출 흐름을 놓고 봤을 때 한화솔루션의 케미칼 사업은 상반기까지 양호한 흐름을 유지하며 분기별 한자릿수대 성장률을 유지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3분기부터 매출이 감소하는 등 업황 악화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올해는 점진적인 중국 리오프닝으로 TDI(톨리엔디이소시아네이트), PVC(폴리염화비닐) 등 주요 제품의 시황 개선이 예상된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는 만큼 향후 평가손실액도 점차 축소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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