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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 재고자산 감소에서 나타난 ‘효율의 미학’

원재료 적기조달 늘려 재고자산 줄이고 회전수 늘리고… 운전자본 감소에 현금도↑

강용규 기자  2023-03-14 09:35:18

편집자주

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수주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수주잔고와 재고자산이 정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감이 많다면 원재료의 수요와 작업 중인 물량(재공품)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로템은 이처럼 일반론과는 다소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수주잔고가 늘어났지만 재고자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다만 이는 원재료 조달의 적시성을 강화하는 재고자산 운용전략에 기인한다. 현대로템은 이러한 의도적 재고 ‘슬림화’를 통해 현금 비축분을 늘리는 재무적 성과를 거뒀다.

현대로템은 2022년 말 기준 재고자산이 235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 대비 10.2% 줄었다. 반면 이 기간 현대로템의 수주잔고는 10조1649억원에서 13조890억원으로 오히려 28.8% 증가했다.

최근 몇 년 현대로템의 수주잔고와 재고자산의 관계를 살펴보면 2020년을 제외하고는 잔고와 재고자산이 정비례한다는 수주산업의 일반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 두 지표의 미스매치가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말이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현대로템 IR 프레젠테이션)

눈에 띄는 부분은 2021~2022년 사이 레일솔루션(철도)부문의 원재료 재고가 1057억원에서 611억원으로 42%나 감소했다는 점이다. 현대로템 레일솔루션부문의 2022년 말 기준 수주잔고는 7조4618억원으로 전년 대비 7.5%밖에 줄지 않았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대량의 원재료를 확보해 두기보다는 원재료가 필요해질 때 조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며 “재고자산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생산을 효율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의 2021~2022년 재고자산 변화를 사업부문별로 살펴보면 디펜스솔루션(방산)부문의 원재료 재고가 646억원에서 799억원으로, 재공품 재고가 9억원에서 537억원으로 늘었다. 폴란드로 수출할 K2전차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일솔루션부문의 재고자산까지 기존의 방식대로 운용한다면 재고자산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현대로템은 레일솔루션부문에서 의도적으로 재고를 슬림화했다는 뜻이다. 현대로템이 이러한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혹은 추진해야 했던 근거는 크게 3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철도사업 일감들의 납기가 방산사업 대비 더 분산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현대로템의 방산 수주잔고는 대부분 폴란드 K2 수출물량이며 이 일감은 2022년 8월~2027년 계약물량으로 납기가 콤팩트하다. 반면 철도사업의 일감들은 납기가 최장 2031년에 이르는 것들도 있다. 이는 철도사업에서 원재료의 적기 조달을 추진할 여유가 비교적 많다는 뜻이다.

이는 두번째 근거인 원재료비 부담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 현대로템의 주요 원재료인 스테인리스강(SUS LT2T)은 톤당 가격이 2021년 490만원에서 2022년 530만원으로 높아졌다. 방산사업은 비교적 콤팩트한 생산활동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원재료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철도사업에서 재고자산을 슬림화할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근거는 물류비용의 불확실성이다. 글로벌 건화물 운임지표인 BDI(발틱 드라이벌크지수)는 2022년 들어 5월23일 연중 최고치인 3369포인트까지 치솟았다가 8월31일 최저치인 965포인트까지 낮아지는 등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로템으로서는 운임지표의 우상향을 염두에 두고 대량의 원재료를 한꺼번에 축적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의 원재료만을 조달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원재료 조달의 적시성을 높이는 현대로템의 재고자산 운용전략은 실제 생산 효율화로 이어졌다. 현대로템의 재고자산 회전수(매출원가를 기초재고와 기말재고의 평균으로 나눈 것)는 2021년 10.2회에서 2022년 11.2회로 늘었다.

게다가 이 기간 현대로템은 재고자산 감소를 통해 현금 보유량이 3197억원에서 5060억원으로 58.2% 증가하는 성과도 봤다. 재고자산은 운전자본(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의 합에서 매입채무를 뺀 것)의 구성요소이며 운전자본은 기업의 영업활동에 꼭 필요한 돈이지만 동시에 현금흐름을 묶는 요인이기도 하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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