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2009년 우리은행 사례 이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자본시장에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불었다. 금융당국까지 나서면서 사태를 진화했고 결국 흥국생명은 입장을 번복해 콜옵션을 행사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혹은 그 이상이고, 발행사가 자기 의지대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돼 그 특징을 토대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흥국생명 사태 이후 신종자본증권을 진정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THE CFO가 조명하고자 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더불어 금융사보다 발행 규정이 느슨한 비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은 취지대로 발행되고 운용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보수적인 금융권은 관례를 깨는 시그널에 민감하다. 최근 흥국생명 사태만 봐도 일반적인 규모인 5억 달러(약 6640억원)짜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에 대한 건이었지만 시장에 주는 여파는 그 이상이었다.
당장 한화손해보험도 내년 7월에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기한이 도래한다. 금액은 2000억가량으로 콜옵션 행사할 계획이지만 이를 보충할 추가 자본 확충 계획은 아직이다. 특히 올해 3분기 기준 자본잠식 상태인 만큼 셈법이 복잡해졌다.
25일 THE CFO 취재에 따르면 한화손해보험은 2018년 7월에 발행한 19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8개월가량 남았지만 국내 채권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유동성 관련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한화손해보험 외에도 내년 콜옵션 행사 여부를 미리 결정해 발표하는 보험사들이 일부 나오고 있다. 한화생명은 내년 4월 예정된 10억 달러(약1조3570억원)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그대로 행사할 계획이다. 푸본현대생명도 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이행한다.
다만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보험금 지급여력(RBC) 비율이 올 3분기 기준 156.3%라 내년에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이를 보충할 다른 자본 확충 계획이 필요하다. 올해 RBC 비율을 150%대로 회복시키는 데 전력질주해왔는데 내년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면서 다시 역주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RBC 비율은 올해 내내 30%포인트 넘게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앞서 올해 1분기 한화손해보험 RBC 비율은 122.8%를 기록했다. 당시 금리상승으로 인한 채권평가손익 하락과 금리리스크 증가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신종자본증권 상환 여파도 컸다.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르면 신종자본증권 상환 후 보험사는 재무건전성을 위해 RBC 비율을 150%로 맞춰야 한다.
이 때문에 한화손해보험은 추가로 신종자본증권을 1500억원 발행하는 등 자본 확충 노력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금융감독원이 급격한 금리상승에 책임준비금적정성평가(LAT)를 통해 LAT잉여액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해주는 긴급 조치를 거쳐 한화손해보험의 상반기 말 RBC 비율은 135.9%으로 올라왔다.
이후에도 한화손해보험은 신종자본증권을 850억원어치 발행하고 제3자 배정방식으로 전환우선주(CPS) 3800만주도 발행했다. 자회사 캐롯손해보험 1750억원 유상증자 등을 거쳐 현재의 RBC 비율(156.3%)을 달성했다.
내년 7월 중 1900억원어치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고도 그동안 어렵게 올린 RBC 비율을 사수하려면 추가 자본 확충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금리상승세가 하반기 더 급격해짐에 따라 신종자본증권 추가 발행 계획은 당분간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손해보험 관계자는 "내년 중 자본 이슈를 해소하기 위한 신종자본증권 추가 발행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 "올해 사옥매각건이 마무리되면 일부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화손해보험이 3분기 말 기준 자본잠식이라는 것이다. 현재 자본금 7737억원, 지배지분 자본총계 513억원으로 표면적으론 93.3%가 잠식됐다. 비지배지분을 포함한 자본총계는 1662억원이다.
한화손해보험 측은 "자본잠식은 연말이 아닌 3분기 기준이며, 금리상승에 따라 매도가능평가손실이 확대되면서 자본건전성이 악화된 것처럼 보인 착시 효과"라 설명했다. 여기에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자기자본이 3조원 넘게 늘어나 향후 자본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 덧붙였다.
현행 회계기준의 경우 부채는 원가평가, 자산은 시가평가로 적용된다. 이에 최근 같은 금리상승기에서 자산가치 하락이 자본 감소로 그대로 이어진다. 내년부터 IFRS17 회계제도가 도입되면 부채도 시가평가를 적용하기 때문에 급격한 금리변동 상황에서도 자본의 실질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금리 상승이 부채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자본감소 영향을 상쇄하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다른 손해보험사들은 현행 회계기준 아래에서도 자본잠식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화손해보험이 그간 자본건전성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특히 최근 같은 고금리 시기엔 IFRS17이 자본 상황 개선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불과 1~2년 전의 저금리 시기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거 IFRS17 도입이 논의됐던 2019~2020년엔 저금리 기조가 강했고 가치평가에 적용되는 할인율도 낮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보험사는 IFRS17이 도입되면 부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다만 최근 상황에선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할인율이 높아지자 원가법 아래 부채보다 IFRS17 적용시 시가법 부채 규모가 더 작아지게 된다.
이에 한화손해보험 관계자는 "올 3분기 기준 83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고 펀더멘털도 견조한 상황"이라며 "현재 사옥 매각과 후순위채 발행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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