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는 시설 투자 못지 않게 연구개발(R&D) 다툼도 치열한 시장이다. 특히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누가 선점하는가에 따라 미래 판도가 뒤집힐 수 있다. 배터리 3사의 연구개발 현황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3사 중에선 삼성SDI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시설 투자에 상대적으로 신중한 것과 달리 R&D에는 공격적이다. 비용 지출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을 압도하고 있다. 기존 리튬이온전지 생산능력(Capa)을 크게 확대하기 보다는 전고체 패권 쟁탈에 전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모 아니면 도' 삼성SDI, R&D에 매출 6~7% 투자
삼성SDI는 올 상반기 기준으로 5147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썼다. 지난해 연간 8776억원을 사용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찍었는데 올해는 작년 상반기(4366억원)보다 18% 가량이 더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1조를 넘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17년 이후론 한해도 빼놓지 않고 연구개발비가 증가 중이다.
매출 대비 비율을 따지면 2020년 7.2%에서 2021년 6.5% 올해 상반기 5.9%로 낮아졌지만 이는 매출이 워낙 가파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전년 대비 20%, 올 상반기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6% 매출이 뛰었다.
연구개발비 상당 부분은 전기자동차용 중대형전지 분야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올해 3월경기도 수원 SDI연구소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착공했다. 해외에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지은 곳이 몇 군데 있지만 국내에선 삼성SDI가 유일하다. 파일럿 라인을 확보하면서 시범생산을 통해 연구성과를 검증하고,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삼성 SDI는 최근 열린 ‘2022 대구국제모빌리티엑스포’에서도 전시장에 전고체 배터리를 배치했다. 상용화 목표시점에 대해선 이미 밝혔던 바와 마찬가지로 2027년을 고수했는데 경쟁사와 비교해 무려 3년 정도 빠르다. 과연 가능한 타임테이블인지를 두고 업계에서 꾸준히 회의적 시선을 보냈음에도 입장에 변함이 없는 배경에는 내부의 적잖은 자신감이 있을 것이란 평가다.
시장 관계자는 "파일럿 라인을 짓기는 했지만 전고체 대량 생산이 가능할지는 기술개발과는 또다른 문제고,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쌀 경우 상업성을 키우기까지 오래 소요될 수 있다"며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삼성SDI의 전력 집중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성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점유율 확대 바쁜 SK온, 비용 축소… LG엔솔은 '투트랙'
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모두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예상시기를 2030년 즈음으로 잡았다. SK온의 경우 현재 미국 ‘솔리드파워’와 협력 중이다. 작년 10월 솔리드파워에 3000만달러(약 380억원)을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 공동개발을 추진해왔다.
지난달에는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고체 배터리 계획을 묻는 의원의 질문에 “연구하고 있다”며 “(리튬이온전지 안전성 문제는) 업계 공통의 과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연구개발비 추이를 보면 다소 보수적이다. 2021년 10월 신설된 이후 연말까지 3개월간 792억원을 썼는데 올 상반기에는 그 2배 기간인 6개월 동안 1040억원을 지출하는데 그쳤다. 매출 대비 비중으로 봐도 7.45%에서 4.08%로 축소됐다. SK온 관계자는 “올해 연구개발비가 줄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지난해 금형 등 기자재를 구입하면서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온이 시설 투자에 있어서는 3사 중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SDI와 차이가 읽힌다. 삼성SDI가 선행기술 확보에 무게를 뒀다면 후발주자인 SK온의 경우 기존 리튬이온전지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려 덩치를 키우는 데 타깃을 고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삼성SDI보다는 연구개발비로 나가는 돈이 적다. 2020년 12월 출범해 작년 6540억원, 올 상반기에 3784억원을 지출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각각 3.7%, 4.0%이다. 삼성SDI와 비교하면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매출은 LG에너지솔루션(9조4129억원)이 6200억원 정도 많았지만 연구개발비는 오히려 1400억원을 덜 썼다.
특징적인 부분은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투트랙(Two-track) 분산 개발을 통해 시장에 발빠른 진입을 노리고 있다. 3사 중 유일하게 고분자계와 황화물계 배터리를 동시에 개발 중이며 고분자계 배터리를 2026년 먼저 상용화하고 삼성SDI와 같은 황화물계 배터리는 2030년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고분자계는 황화물계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공정이 단순하고 액체 전해질과 비슷해 기존 설비를 활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각 사마다 우선순위 차이는 있겠지만 전고체 개발에 손을 놓을 수는 없고, 차세대 배터리 시장이 열리기까지 리튬이온전지에 대해서도 팩 설계 등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며 "연구개발비 증가는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