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주요 계열사 사외이사의 급여를 2020년 대비 약 두 배 늘렸다. 재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같은 조치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사외이사의 보수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글로벌 해외 기업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SK그룹의 사외이사 보수 확대를 시작으로 재계 전반으로 사외이사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체계가 확산될지 주목된다.
◇SK㈜·SK이노 사외이사 연봉 1.6억 추산...국내 300대 평균 5400만원
13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지주사인 SK㈜와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의 사외이사의 보수는 올해 1인 평균 1억6000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업의 사외이사들은 이미 올 상반기에만 1억1000만원대의 급여를 수령했다. 이 중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6000만~7000만원이 스톡그랜트 형태로 지급됐다.
하반기에 스톡그랜트를 제외한 상반기 보수와 같은 금액을 받는다면 사외이사들은 1억6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게 된다. 이는 2020년 SK㈜,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들이 받았던 1년 평균 보수인 8400만원보다 두 배가량 많다.
SK㈜의 경우 사외이사 1인이 평균적으로 받은 급여가 2018년과 2019년 7900만원, 2020년 8400만원으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사외이사의 평균 임금이 1억1500만원으로 뛰었다.
SK이노베이션도 사외이사 임금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줄곧 평균 8400~8500만원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억2240만원 수준으로 높였다. 최근 중간지주사로 전환한 SKC는 올 상반기까지 사외이사 1인 평균 3800만원을 지급했다. 스톡그랜트로 지급한 보수는 1인당 4250만원 수준으로 이를 포함하면 SKC 사외이사들은 올해 평균 1억1850만원의 보수를 받게 된다. 이는 지난해 SKC 사외이사 급여 평균인 7600만원 대비 56% 늘어난 금액이다.
사외이사의 보수는 기업마다 평균 3000만원대에서 1억원 이상으로 다양하다. 이중 SK그룹의 사외이사 보수는 다른 기업과 비교해도 많은 편이다. 지난해 사외이사 보수를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한국CXO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300대 기업 사외이사들이 받은 보수 평균은 5410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외이사에게 1억원 넘는 금액을 지급한 곳은 단 10곳뿐이었다.
SK㈜와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들이 올해 받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전자에 이어 주요 대기업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이미 1억3400만원의 보수를 사외이사들에게 지급했다. 현대차그룹이나 LG그룹보다는 크게 앞선다.
◇미국 S&P 500대 기업 평균 29만달러...재계 보수 인상 확산 촉각
SK그룹이 사외이사들의 보수를 대폭 높이는 이유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SK그룹 계열사들과 같이 이사회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 기업에게는 이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이 곧 경쟁력이 된다. 보수가 적으면 사외이사들의 적극성과 책임감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최근 국내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본격화하며 사외이사 영입에도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외이사를 SK그룹에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크다.
SK그룹이 사외이사에 대한 처우를 높이며 이런 추세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재계 관계자는 "경력이 탄탄한 사외이사들이나 인력풀이 한정된 여성 사외이사의 경우 지금도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며 "인재영입 차원에서 기업들이 사외이사의 몸값을 점점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의 업무 수준에 비해 보상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1년에 몇차례 열리지 않는 이사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데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것이 과도하게 많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사외이사의 책임에 비하면 결코 높지 않다는 반박이 맞선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감시·감독할뿐 아니라 의사결정에 참여해 기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자칫 잘못하면 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해외 현황과 비교해도 국내 사외이사의 보수는 높은 편은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윌리스타워스왓슨(Willis Towers Watson)의 조사결과 지난 2020년 미국 S&P 500 지수에 소속된 기업들은 사외이사에게 1인 평균 29만달러(약 4억원)를 지급했다. 스톡그랜트와 비슷한 주식보상이 포함된 금액이고, 조사 시점이 2020년임에도 지난해 국내 300대 기업 사외이사 보수 평균(5410만원)과 차이가 크다.
SK그룹의 사례처럼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사외이사의 책무가 늘어남에 따라 사외이사 보수는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외이사의 임금을 올리기에 앞서 보수체계 산정 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보고서를 통해 "국내 상장기업 사외이사의 보수가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사회의 실질적인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각 사외이사의 직무와 책임에 맞는 합리적인 보수를 책정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외부 주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