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고영테크놀러지(고영)의 주가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3개월 전 2만900원을 찍으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후 지속적인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면서 반토막에 근접한 수치(1만2250원)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때 코스닥 반도체 장비 섹터의 대장주 중 하나였던 입지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흐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고영은 다시 반등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말 고영의 그래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이전까지 하향세를 걷고 있었던 터라 상승세가 더욱 도드라졌습니다. 원동력은 AI 반도체 검사장비 개발 이슈였습니다. 이미 반도체 소자 업체 등에 3D 검사장비를 대거 공급하고 있었던 고영은 지난해 하반기 HBM 시장의 개화에 발맞춰 AI 반도체 관련 어드밴스드 패키징 검사장비를 출시하며 시장의 이목을 모았습니다.
당시는 종목명에 AI 혹은 HBM 키워드만 거론돼도 투심이 몰리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트렌드는 현재도 유효하죠. 3D 검사장비 부문 글로벌 1위 고영이 HBM 시장을 타겟팅한 AI 어드밴스드 패키징 검사장비를 출시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기관과 개인 할 것 없이 일제히 시장의 관심이 고영으로 쏠렸습니다.
12월 8일 경 1만1300원에 불과하던 주가는 2거래일 만에 1만6000원 선으로 치솟았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 2월 하순 장중 2만4000원 대를 찍기도 했습니다. 2개월 만에 시총이 2배가 된 셈입니다. 안정적인 펀더멘털과 높은 외국인 기관 비중(60%) 덕에 변동성이 크지 않던 종목에 파란이 일어난 형국입니다.
하지만 3월 사업보고서가 공시된 후 상승세를 마감했습니다. 3개월 간 완연한 우하향세를 보이면서 시총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죠. 지난해 반도체 시장이 추동한 글로벌 불황 탓에 매출액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입니다.
2022년 매출액 2754억원, 영업이익 443억원을 기록한 고영은 지난해 말 매출 2256억원, 영업이익 20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장비주 중 드물게 20% 가까운 영업이익률을 자랑했지만,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며 이익률이 9% 수준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실적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지 못하면서 투심이 돌아선 것이죠.
◇Industry & Event
고영은 표면실장(SMT) 3D 검사장비 부문의 글로벌 1위 제조사입니다. 2000년 중반 업계 최초로 3D 검사장비를 출시한 이래 SPI(납도포검사) 분야에서 1위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전 세계 SPI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52%)하고 있습니다.
이후 출시한 AOI(자동광학검사) 장비 역시 32%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검사장비 분야에서 만큼은 '고영 이전과 이후'가 명확히 나뉩니다. 2D 장비 위주였던 시장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입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우주항공, 군수 등 온갖 제조 현장에서 고영의 장비가 중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AI 반도체 시장의 개화에 발맞춰 어드밴스드 패키징 검사장비를 내놓으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연말 WLP(웨이퍼레벨패키징)을 수행하는 파운드리에 신규 검사장비 '젠스타(ZenStar)'를 공급하면서 HBM 시장에 이름을 올렸죠.
반도체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정에서 불량 검사로 생산 수율 향상을 돕는 장비입니다. 웨이퍼 상 실장된 볼과 경면 부품의 동시 검사가 가능하고, 전 방향 3차원 측정 기반 웨이퍼 범프 검사, 딥러닝 기반 비전 알고리즘 최적화 등의 기능을 탑재했습니다. 고영의 광학, SW 기술이 유감없이 펼쳐진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월에 고광일 대표가 과학기술훈장을 수훈하면서 재차 기술력을 공인 받았습니다. 2000년 중반 세계 최초로 3D 검사장비를 선보인 이래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 소부장 기업의 입지를 확대했다는 공적을 인정 받았습니다. 고영이 고객사로 두고 있는 글로벌 회사만 해도 3200곳 이상입니다.
가장 최근의 이슈는 고영의 미래 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뇌수술 로봇(카이메로)의 FDA 인허가 신청 건입니다. 카이메로는 2011년부터 개발에 착수한 뇌 수술 가이드 로봇입니다. 환자의 의료 영상을 기반으로 실시간 수술 경로를 탐색하고, 의료진에게 표적 위치와 자세를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역시 전례가 없는 수술 로봇이죠.
국내 주요 병원 6곳에 공급됐고, 300건 이상의 증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FDA 승인을 받는다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이 마련됩니다. 내년 FDA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하고, 미국 판매망을 순차적으로 넓혀 간다는 방침입니다. 단순히 한 회사의 기술 동향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장비 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사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Market View
고영에 대한 시장의 시각을 논하기 앞서 고영의 주주 구성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영은 외국인 비중이 높은 회사입니다. 지분의 60% 가량을 외국인이 쥐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물론 유명한 회사이지만, 해외에서 더 명성이 높은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영의 경영전략·IR 등을 총괄하는 박현수 이사(경영기획실장)는 연중 3분의 1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냅니다. 최근에도 런던, 에딘버러, 파리, 프랑크푸르트, 싱가포르 등을 돌며 해외 기관 투자자를 만났습니다.
알리안츠(ALLIANZ GLOBAL INVESTORS)와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 퍼스트 센티어(FIRST SENTIER) 등이 주요 주주입니다. 알리안츠가 10.16%, 베일리 기포드가 7.30%, 퍼스트 센티어가 5.93%의 지분을 쥐고 있군요. 특히 미래 산업 지형도를 가늠하고, 선제적 투자를 하기로 이름난 베일리 기포드의 존재가 눈에 띕니다. 고영의 기술력과 제품이 글로벌 산업 지형도 내에서 파괴력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카이메로 역시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입니다.
최근에는 미래에셋증권에서 리포트가 자주 생산됐습니다. 김충현 연구원은 2월 '반도체 검사장비와 뇌수술 로봇으로 리레이팅 진행 중'이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AI 어드밴스드 패키징 검사장비와 카이메로에 주목했습니다. 5월 3일에는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이 반도체 검사 장비의 시장 진입과 해당 부문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썼습니다. 9일에는 김충현 연구원이 'High expectations for brain surgery robots'과 '어려운 전방시장, 뇌수술로봇 기대감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리포트로 카이메로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Keyman & Comments
고영의 키맨은 고광일 대표입니다. 고 대표는 '로봇쟁이'를 자처하는 국내 1세대 로보틱스 엔지니어입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제어계측학과 석사, 피츠버그대 박사를 거친 천생 엔지니어입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LG산전, 미래산업 등을 거쳤습니다. 2002년 뜻 있는 동료들을 규합해 지금의 고영을 창업했습니다.
지난해 여주 신공장 오픈식에서 고 대표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 대표는 "작은 회사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겸양으로 들을 수 있지만 '우리는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의미로도 들렸습니다. 카이메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는 매우 신이 나 보였습니다. 미래 의료 산업과 로봇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겠다는 야심도 엿봤습니다. 카이메로는 고영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경영전략과 IR 부문에서는 박현수 이사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겠군요. 고 대표를 보필해 고영의 큰 그림을 짜는 인물입니다. 글로벌 사업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더벨과의 통화에서 "최근 유럽, 싱가포르를 장기간 다녀왔는데, 글로벌 기관들의 높은 관심을 다시 체감했다"면서 "현재 주가가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지만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 시장에 장밋빛 전망만 전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기적 주가 부양을 위해 애드벌룬을 띄우는 식의 플레이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카이메로와 관련해서는 "FDA 품목허가를 획득한 이후 미국 판매망을 순차적으로 넓히겠다"고 밝혔습니다. 유저(수술자)의 레퍼런스가 핵심인 만큼 명확한 세일즈 포인트와 메인터넌스(유지보수)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 초기 기간은 고영 미국법인을 통해 직접 마케팅을 진행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내년 FDA 승인 이후가 기대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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