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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맞물려 많은 상장사들은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벨은 주요 상장사들의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해보고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적인 밸류업이 가능할지 점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합성피혁 제조사 '백산'이 주주 정책에 힘을 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를 핵심 현안으로 두고 경영을 전개하는 모습이다. 설립 후 40여년간 관련한 정책이 뚜렷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됐다. 창업주 2세인 김한준 대표가 주주 정책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 후 이같은 기조가 뚜렷이 감지된다. 변화에 힘 입어 밸류에이션(기업가치)도 반응하는 추세다.
백산은 올해로 김한준 대표 단독 경영 체제 3년차에 접어들었다. 김 대표는 창업주 김상화 전 대표의 차남이다. 김 전 대표가 2022년 5월 별세하면서 기존 각자 대표 체제에서 변경됐다. 당시 김한준 대표가 입사 25년여에 접어든 해였다. 학부(보스턴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직후 곧장 입사해 실무 경험을 쌓은 김 대표는 51세가 돼서야 온전히 경영 운전대를 잡았다.
김 대표는 곧장 주주 정책 손질에 돌입했다. 2015년 이후 7년여만에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전체 발행 주식수의 약 4%인 100만주를 사들이는 거래였다. 총 101억5000만원을 매입 자금으로 투입했다. 부친이 작고한 직후 신속히 이를 추진했다. 매입한 주식은 곧장 소각해 유통 물량을 조절했다. 이는 주당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해 주당순이익(EPS)은 전년대비 약 140% 뛰어올랐다.
넉넉한 잉여금 재원을 활용했다. 이를 활용해 자기주식을 소각했다. 2021년 말 연결 기준 백산은 약 1000억원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둔 상태였다. 이를 재원으로 별도 자본금 변동 없이 주식 소각을 진행했다. 이 당시 자기주식 취득액 한도 또한 1340억원으로 재정적으로 무리가 따르지 않는 수준이었다.
백산 관계자는 "아무래도 경영 체제 변동 후 주주 정책에 각별히 더 신경쓰는 분위기"라며 "내재 가치 대비 1주당 가액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속되고 있던 점을 고려해 경영진 단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 설명했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달 기준 백산 외국인 지분율은 10.25%로 집계됐다. 최근 몇 년간의 능동적인 주주 정책이 외국인 지분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앞서 2020~2021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소진율은 5%에 못 미쳤다. 하지만 김한준 대표 단독 체제 전환 후 주주 환원 정책이 본격화되며 해외 기관투자자의 관심도도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IR(기업설명회) 문의도 활발히 대응 중이다.
밸류에이션은 이에 화답하는 분위기다. 지난 1년간 백산 시가총액은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 1분기 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53배를 가리킨다. 당분간 흐름도 낙관적이다. 내달 전체 발행 주식의 2.2% 물량(51만5000주) 추가 소각을 앞두고 있다. 총 56억6500만원 규모다.
아울러 배당 정책 확대도 예고했다. 백산은 지난해 1986년 설립 후 처음으로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당해 초 정기 주주총회에서 중간배당과 관련한 정관을 신설,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지난해 백산 주당배당금(DPS)은 전년대비 2배 늘어난 300원을 기록했다.
배당 확대 기조는 올해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영업 실적이 전년대비 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주주 환원 금액 증액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간배당 정례화 여부는 향후 2~3년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