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금융그룹 간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누가 뭐래도 지주 소속이다. 주력 계열사 CFO의 역할도 있으나 지주 CFO는 그룹의 전반적인 자금 조달 및 투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재무라인 주요 이벤트인 실적발표회(IR)에서 마이크를 잡는 것도 지주 CFO의 몫이다.
하나금융지주 CFO로 가는 길은 하나로 좁혀져 있다. 바로 은행이다. 비은행 출신 CFO 계보가 끊긴 뒤 외환은행 출신 CFO가 수년간 자리를 지켰다. 이후엔 하나은행 CFO를 경험하고 지주 CFO로 이동하는 패턴이 굳어졌다. 하나은행 경영기획그룹이 지주 CFO를 배출하는 엘리트 코스다.
경영기획그룹이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은 건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취임 후다. 전임자인 김승유 전 회장은 매트릭스 조직 체계를 만들면서 지주와 은행의 유기적인 협업을 중시했다. 이와 달리 김정태 전 회장 체제에서는 은행 경영기획그룹의 역할을 선명히하고 은행 CFO가 지주 CFO로 올라설 수 있도록 했다.
현직인 이후승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사진)이 대표적인 은행 CFO 출신이다. 이 부사장은 지주 경영지원실 부장, 그룹감사총괄 상무를 거쳐 은행 경영기획그룹장을 맡았다. 은행 경영기획그룹장으로 1년 재직한 후에는 지주의 그룹재무총괄이 됐다. 은행 경영기획그룹에서 지주 CFO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은 셈이다.
전임자인 이승열 하나생명 대표(사진)도 은행 경영기획그룹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지주 CFO가 된 사례다. 은행 경영기획부 부장, 경영기획그룹 본부장을 거쳐 경영기획그룹장까지 올라갔다. 그가 경영기획그룹장이 된 2016년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직후였다. 외환은행 경영기획부 부장 출신인 그는 3년 간 은행 CFO로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한 공로를 인정받고 2019년 지주 CFO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은행 CFO로 복귀했다가 하나생명 대표가 됐다.
이 대표가 2016~2018년 은행 CFO로 재직할 때 지주 CFO를 맡은 곽철승 전 전무도 은행 출신이다. 이 대표와 외환은행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곽 전 전무는 외환은행 재무기획부 부장, 기획관리그룹 본부장을 역임했다. 전임 지주 CFO가 갑작스럽게 사퇴한 탓에 곽 전 전무는 하나은행 경영기획그룹을 거치지 않고 지주 CFO로 직행했다.
곽 전 전무에 앞서 지주 CFO를 맡은 이우공 전 부사장은 지주 리스크관리팀 담당 부사장, 외환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을 역임한 리스크 관리 전문가다. 다만 하나은행 경영관리본부장을 맡아 재무라인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이 전 부사장과 함께 외환은행 합병 작업을 주도한 주재중 전 부사장 역시 외환은행 출신으로 2013년 한해 지주 CFO를 맡았다.
비은행 출신 지주 CFO 계보는 2012년 조기욱 전 부사장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2009~2010년, 2012년 지주 CFO로 재직했다. 그는 한화, 대한생명, 딜로이트컨설팅 등을 거쳐 하나금융지주에 합류했다. 비은행 출신일 뿐만 아니라 외부 출신으로 지주 CFO를 맡은 흔치 않은 사례다.
2011년 지주 CFO를 맡은 강승원 전 전무는 하나대투증권(현 하나증권) 경영전략본부장 출신이다. 당시 40대의 나이로 재무라인 수장이 된 파격 인사였다. 김승유 전 회장이 줄곧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강조했기에 가능했던 인사다.
앞으로도 지주 CFO는 비은행보단 은행 출신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나금융지주는 사업 포트폴리오 정비를 일단락한 상태다. 비은행 계열사 CFO를 발탁해 특별 임무를 맡기기보다 수년간 자리잡은 은행 경영기획그룹장 기용 패턴을 이어가는 게 안정적이다. 현재 은행 경영기획그룹장은 남궁원 부행장(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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