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둘러싸고 이종산업 간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독자적으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한 ICT 기업들은 최근 부상하는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과 손을 잡았다. 공동 사업을 위한 업무 제휴부터 지분 투자, 합작법인 설립에 이르기까지 콜라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들이 동맹을 구축한 배경을 짚어보고 어떤 협업 모델을 구상해 청사진을 그리는지 들여다본다.
네이버제트는 '제페토(ZEPETO)'를 통해 국내를 넘어 아시아 메타버스 플랫폼 1위 사업자 지위를 확보했다.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플랫폼을 구축한 네이버제트는 창작자(크리에이터) 생태계를 확장해 경쟁력을 한층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실탄을 마련한 이후에는 투자 대상도 광범위해졌다. 블록체인, 게임 등 제페토를 구심점으로 전략적으로 뭉칠 수 있는 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과는 제휴를 맺고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패션·엔터 등 글로벌 톱티어 기업과 제휴…3억 고객 확보한 메타버스 선두주자
2018년 8월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는 글로벌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를 선보였다. 트렌드에 민감한 전 세계 Z세대 사이에서 대세로 자리 잡으며 출시 1년 반만에 글로벌 누적 가입자 수 1억3000만명을 돌파했다. 본격적인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해 스노우는 2020년 전담 법인을 분사해 네이버제트를 만들었다.
네이버제트는 스노우의 완전자회사로 출범했으나 이내 국내 엔터 3사 빅히트·YG·JYP엔터테인먼트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이들의 글로벌 지식재산권(IP)을 콘텐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달 초에도 데뷔를 앞둔 JYP 신인 걸그룹 엔믹스(NMIXX)의 콘텐츠를 담아 엔믹스 월드를 구현했는데 방문 이용객이 6일 만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 3월 1억명이었던 제페토 이용자 수는 1년 뒤 1억3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지속해서 제휴를 추진하며 플랫폼의 완성도를 높였다.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크리스찬 디올이 속한 LVMH그룹과 콜라보를 하는 등 꾸준히 제휴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랄프로렌, 구찌, 나이키, 스타벅스, 비자(VISA),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배스킨라빈스, CGV 등 유수의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여기 힘입어 지난해 2월 제페토 이용자 수는 2억명을 넘었고 해를 넘겨 이번 달에는 3억명도 돌파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미 제페토는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적용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구축했다. 2020년 3월 선보인 '제페토스튜디오'는 제페토가 구현하는 가상현실 내에서 착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플랫폼이다.
아이템 판매로 제페토 내 재화 '젬(ZEM)'을 얻고 이를 현금화할 수 있다. 제페토스튜디오는 오픈 한 달 만에 크리에이터 6만여 명을 확보했고 매출도 8억원 이상 발생했다. 월 1000만원 이상 수입을 내는 인플루언서도 등장하며 '유튜버' 같은 하나의 직업군을 만들어냈고 일본에서는 제페토 월드 공식 맵 '벚꽃정원' 이미지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아시아 1위를 넘어서 전 세계 이용자들이 제페토 상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하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게 목표"라며 "창작자 생태계 강화에 초점을 맞춰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망 스타트업 중심 공략…블록체인 생태계
이미 메타버스 생태계 최전선에 있는 네이버제트는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작년 10월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글로벌 파트너들로부터 2236억원을 유치하며 다시금 변곡점을 맞았다. 확보한 자금은 미국, 홍콩을 거점으로 서비스 확장을 위한 인재를 확보하고 창작자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활용키로 했다.
네이버제트의 투자가 본격화한 것도 이때와 맞물린다. 작년 11월 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0건의 투자를 집행했다. 자금 수혈 이전 투자가 해외 계열사 설립을 포함해 3건에 그친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네이버제트의 투자 면면을 들여다보면 취득 목적에 '전략적 사업 시너지 강화'를 공통으로 담고 있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관련 기술개발 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슈퍼블록은 웹 3.0 기반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이고 벌스워크는 유튜브 채널 '픽시드(Pixid)'를 운영하는 메타버스 크리에이터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사업자다. 젭(ZEP) 역시 온라인 캐주얼 게임 개발사 슈퍼캣과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 회사다. 메타스페이스컴퍼니와 머플은 각각 메타버스 플랫폼 콘텐츠와 메타버스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한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굿갱랩스(GOOD GANG Labs Pte. Ltd.) 역시 메타버스에 기반한 웹 3.0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서비스 업체이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 위치한 하데레크(Haderech Ptd. Ltd.)는 블록체인 개발사다.
메타버스와 연관성이 깊은 게임 개발사에도 투자를 진행했다. 네이버제트의 롤모델이자 경쟁 상대인 글로벌 1위 메타버스 사업자 로블록스(Roblox) 역시 게임이 메인 콘텐츠다.
루노소프트와 합작해 만든 게임 개발사 피노키오를 비롯해 미국 게임 개발사 브레이브 터틀스(Brave Turtles, Inc.)에 투자했다. 이밖에 가상인간 전문 개발사 페르소나스페이스, 음원 콘텐츠 개발업체 숫자쏭컴퍼니 등 제페토 서비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전략적 투자가 이뤄졌다.
이미 확고히 자리잡은 브랜드와 제휴를 맺은 것과 달리 투자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신생기업 위주로 진행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각각의 회사가 지닌 잠재력을 보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결국 메타버스 안에 다양한 신기술이 녹아 들어가는 만큼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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