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올해 1월 26일 34만20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최저가를 기록한 삼성SDI의 주가가 이달부터 강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가 이달 6일 개최한 '인터배터리 2024'에 직접 참석한 날이 기점입니다.
삼성SDI 주가는 최 대표의 두 마디에 반응했습니다. 당시 최 대표는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원통형 46파이 배터리 양산 준비가 끝났다"며 "LFP(리튬인산철)와 전고체 배터리의 양산 목표 계획도 그대로 유지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에 삼성SDI 주가는 전날보다 13% 오른 41만2000원(종가 기준)을 기록해 올들어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습니다.
급등한 삼성SDI 주가는 3월 12일 45만950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3거래일 만에 5~120일선 저항을 모두 이겨내고 반등에 성공한 것입니다. 26일 주가는 장중 49만3500원을 기록해 한 달만에 40% 넘는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최근 상승세는 연기금과 기관투자가 이끌고 있습니다. 연기금은 최근 7거래일 모두 순매수에 나서며 10만주를 넘게 사들였고, 기관도 7거래일 중 5거래일을 순매수로 나서 6만주 규모를 순매수했습니다.
이 기간 개인은 수익 실현을 위해 매도세로 돌아섰습니다. 이달 22일과 25일 각각 18만3000만여주, 4만1000여주를 내다 팔았습니다. 같은 기간 순매수로 돌아선 외국인과 정반대의 매매 양상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급등에도 2년 동안 크게 떨어진 주가를 회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1월 26일 34만2000원까지 떨어진 주가는 50만원의 벽을 아직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2021년 8월 13일 주가가 역대 최고점인 82만8000원까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아직 낮은 수준입니다.
◇Industry & Event
국내 이차전지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속도조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기 침체에 올해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이 현실화된 탓입니다. 실제 K-배터리의 주요 고객들이 위치한 미국은 올 1분기 전기차가 8만9042대 신규 등록돼 전년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2022년과 지난해 성장률이 50%를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성장 속도가 크게 둔화한 셈입니다.
하지만 삼성SDI는 미국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현지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는 단기적인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삼성SDI의 북미 생산은 내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투자로 북미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게 오히려 득이 된 것입니다.
삼성SDI의 최근 주가 흐름만 보면 투자자들은 오히려 미국 시장에 늦게 진출한 점을 장점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증설 러시를 벌였던 2022년에는 수익성 위주의 보수적인 투자 전략으로 내실을 다졌고, 올해부터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첫 단독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 전략을 꾀해 성장 잠재력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단독 공장 건설은 그간 북미 지역에 완성차 기업과 합작만 준비해 온 삼성SDI로선 공격적인 움직임입니다. 앞서 최 대표이사는 이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 단독 공장 건설도 준비할 예정"이라고 공식화한 바 있습니다. 최근 전기차·배터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삼성SDI가 미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불황 속 투자'를 택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삼성SDI의 내년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년은 삼성SDI가 스텔란티스와 합작공장을 가동하며 승부처의 원년으로 선언한 해입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핵심 광물의 부가가치 달성 조건이 상향 조정되는 시기로, '탈중국' 공급망을 목표로 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신규 고객 확보에 장점을 가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잇따른 차세대 배터리 출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천안 공장에 46파이 배터리 양산 라인을 구축하고 제너럴모터스(GM) 등에 시제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46파이 원통형 배터리는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4배 높으며, 출력은 6배 향상된 제품입니다.
배터리 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 전고체 배터리 ‘900Wh/L ASB’도 양산 로드맵에 발맞춰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지난해 12월 첫 프로토타입 샘플을 생산해 올해부터 3년간 샘플 제작에 들어가 2027년 양산에 나서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는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보다 2~3년 빠른 속도입니다.
◇Market View
증권가도 삼성SDI를 이차전지 기업 중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SDI의 배터리 분야 투자 확대 계획이 속속 발표되면서 시장 성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주가가 과도하게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높아졌다는 의견입니다.
최 대표가 인터배터리 2024에 참석해 올해 투자 전략과 차세대 배터리 계획을 발표한 후 삼성SDI의 적정주가를 다시 살펴본 증권사는 4곳입니다. 이중 1곳은 목표치를 높였습니다.
50만원에서 55만원으로 상향한 신한투자증권은 "기존에는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로 저평가 대상에 꼽혔지만, 최근 신기술 공개와 합작법인 설립 등 과거와 달라진 회사의 입장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차증권도 투자의견을 '매수'로 유지하고 목표주가는 60만원을 유지했습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가 토요타보다 성능 면에서 앞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입니다. 아울러 경쟁 배터리 업체보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기도 빠를 것으로 보여 주가 반등에 성공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나증권은 배터리 셀 외의 사업 가치를 14조원, 배터리 셀 사업 가치는 37조원으로 평가해 증권가에서 가장 높은 목표주가 81만원을 유지했습니다. 한화투자증권도 투자의견을 '매수'로 유지하고 목표주가 70만원을 유지했습니다.
◇Keyman & Comments 삼성SDI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김종성 부사장입니다. 그는 198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2년 그룹 전반적인 재무·전략을 구축한 미래전략실에서 상무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2021년부터는 삼성SDI 경영지원실장 부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더벨은 삼성SDI의 향후 주주환원정책 계획과 최근 주가 상승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이날 김종성 CFO와 접촉했습니다. 김 CFO는 향후 자사주 소각 등 계획된 주주환원정책이 있냐는 질문에 "답변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라며 "이달 열린 주주총회 때 최 대표가 언급한 부분이 있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장기적·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 특성상 당장 주주환원정책 도입 계획은 없으나, 내년 정도 주주환원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최 대표의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달부터 삼성SDI 주가가 급등한 원인을 묻은 질문에는 "주가는 떨어질 때도 왜 떨어지는지 잘 모른다"며 "증권 시장에서 원인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SDI IR 관계자는 "최 대표가 인터배터리 2024에 참석해 전고체 배터리 사업화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시장 기대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기관과 외국인의 순매수가 늘어나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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