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2019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분사 이후 글로벌 생산능력을 빠른 속도로 확충했다. 분사 당시 5억2000만㎡에 불과했던 SKIET의 생산능력은 지난해 말 기준 15억3000만㎡로 3배가량 늘었다.
현재까지 증설이 완료된 곳은 중국 창저우 공장으로, 회사는 추가로 폴란드 실롱스크 공장을 가동한 이후 현지 증설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적 악화 속에서도 증설 자금 마련을 위한 차입은 주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약진에 고전한 SKIET는 공장 가동률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고객사 다변화를 통해 시장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유럽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라 불리는 CRMA(핵심원자재법) 시행은 유럽 현지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SKIET에 반전의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럽 증설 숨고르기 속 총차입 1조 돌파SKIET는 지난해 총 6억7000만㎡ 규모의 중국 창저우 공장 증설 작업을 완료했다. 2019년까지 국내에서만 5억2000만㎡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던 회사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거점 확대를 목표로 공격적인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 첫발로 2020년 11월 창저우공장(3억4000만㎡) 가동을 시작했고 이후 지난해 1월까지 순차적으로 2~3단계 증설을 완료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현지에 진출한 배터리 사업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용도다.
또다른 핵심 거점인 유럽의 경우 대외 요인으로 인해 증설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2021년 10월 폴란드 실롱스크공장 가동 이후 올해 2~3단계 증설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 하에 지난해 초기 증설 및 가동을 시작해야 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물가·전기료 인상 여파로 증설 일정을 일부 미뤄야 했다.
고정비가 높은 분리막 사업 특성상 증설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며 SKIET의 수익성도 뒷걸음질쳤다.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이 주 원재료인 분리막의 경우 니켈, 리튬 등을 원재료로 하는 양·음극재와 달리 원료 시황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다만 수익성을 높이려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려 고정비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지 수요가 높은 중국 공장의 경우 지난해 말 가동률이 90%대 수준을 보였지만 폴란드 공장은 60~70%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럽 현지 전력비 인상, 중국 업체의 공급과잉 등까지 겹치며 지난해 SKIET의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한 영업손실 523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은 악화됐지만 SKIET는 증설 일정 조정을 통해 신규 자금을 확충하는 시간을 벌었다. SKIET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친 폴란드 현지법인(SK hi-tech battery materials Poland sp. z o.o)의 차입(총 5131억원)에 채무보증을 결정했다. 채무보증 기간은 모두 2025년 이후까지로 장기차입에 해당한다.
올해 진행될 2단계 증설(3억4000만㎡)과 내년에 있을 3~4단계(각 4억3000만㎡) 증설에 맞춰 사전에 자금을 확충한 것이다. SKIET의 총차입금 규모 역시 따라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난해 말 기준 총차입금(장·단기차입금+유동성장기부채) 1조316억원을 기록했다. SKIET의 총차입금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RMA 초안, 유럽 생산능력 기대효과최근 3년 사이 SKIET는 차입금의존도 20%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총차입금이 1조원을 넘어선 지난해에도 차입금의존도 29.5%를 기록하며 견조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부채비율이 43.7%(2021년)에서 60.8%로 올라가긴 했으나 아직은 우량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현금창출력이 떨어지면서 채무상환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악화했다. 지난해 말 SKIET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은 1036억원이었다. 차입금은 늘고 현금창출력은 떨어지면서 총차입금/EBITDA는 10배로 나타났다. SKIET의 총차입금/EBITDA 배수가 두자릿수대로 올라선 첫 사례다.
자금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보충한 가운데 앞으로 예정된 투자를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면 결국 유럽 현지에서의 안정적인 가동률 및 수요 확보에 따른 수익 창출이 주요 과제로 남는다. SKIET가 예상하는 남은 유럽 증설 작업에 필요한 자금은 약 9000억원 수준이다.
처음 글로벌 증설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중국·폴란드 증설에 필요한 자금으로 3조원을 예상했고, 지금까지 지출한 금액은 2조1000억원 규모다. 이외에도 추가로 북미 현지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이 가운데 유럽 현지의 CRMA 도입과 같은 정책 변화는 SKIET에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CRMA 초안에 따르면 현지 공급망 강화를 위해 주요 원자재의 역내 채굴량 최소 10%, 가공량 40%, 재활용 비율 15% 등 조건을 붙였다. 아직은 초안만 공개된 상태지만 분리막 같은 경우 니켈, 리튬 등 핵심 원자재 조건에선 자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SKIET가 역내 생산능력을 끌어올릴 계획인 만큼 CRMA는 위기보다 기회에 가까운 셈이다. 2024년 SKIET의 예상 생산능력 27억3000만㎡ 가운데 유럽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56%(15억4000만㎡) 규모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