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주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 규모가 작은 소액주주를 소위 '개미'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업공개(IR), 배당 강화, 자사주 활용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힘주고 있다. 더벨이 기업의 주주 친화력(friendship)을 분석해봤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 내 계열사 가운데 자기주식 활용을 가장 잘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122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해 국내 대기업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9위에 오른 현대자동차(650억원)보다 세 계단 앞선 6위에 꼽혔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자기주식 활용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현대모비스는 2019년부터 자사주 보유 규모를 늘려 유통주식 수를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거르지 않고 주가 부양 효과가 높은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주주 환원책의 일환으로 새로운 자사주 정책을 공개해 이목이 집중됐다.
◇자사주 '1조' 매입 목표 달성, 60% 소각해 주가부양 '집중'
현대모비스는 2015년 자사주 규모를 크게 늘린 이후 3년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2014년 180만6616주였던 자사주 수는 이듬해 말 278만55주로 53.9%로 증가했다. 자사주 보유량이 증가하면서 유통주식 수는 2014년 9553만7247주에서 9456만3808주로 낮아졌다. 이후 2018년까지 3년 동안 자사주와 유통주식 수에 큰 변동은 없었다.
반면 2019년부터는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186만9535주로 떨어졌던 자사주 보유 수가 이듬해 253만2600주, 지난해 52만5735주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2년 동안 각각 35.5%, 39.2% 증가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유통주식 수는 지난해 9104만7359주로 떨어졌다. 2013년(9553만7247주)과 비교해 4.7% 줄어든 수치다.
현대모비스가 3년간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자사주 '1조원' 매입 계획이 자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9년 3개년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1조원 매입이 골자였다. 실제 현대모비스는 2019년 3225억원, 2020년 2348억원, 지난해 4286억원 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는 총 9859억원 규모로 앞선 공약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자사주 매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각도 매년 이뤄졌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자사주 매입과 동시에 소각을 진행해 총 5986억원 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구체적으로 2019년 4736억원, 2020년과 지난해 각각 625억원 규모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높이는 가장 적극적인 주가 부양 행보로 꼽힌다.
◇올해 '3300억 매입·625억 소각' 계획...'지배구조 개편' 연관성은
그간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현대모비스가 최근 새로운 자사주 활용안을 발표했다. 우선 자사주 정책을 3년 단위에서 1년 단위로 발표하기로 결정한 점이 눈에 띈다. 앞서 현대모비스는 2019년 3개년 이행 계획을 발표해 총 1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 가운데 1875억원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올 한 해 33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625억원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매입 규모는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자사주 소각은 3년 연속 같은 규모로 이뤄진다. 현금 수요와 경영환경 불확실성을 감안해 자사주 활용 계획을 탄력적으로 수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로운 자사주 정책과 관련해 현대모비스는 "주주 환원 성과를 총주주수익률(TSR, Total Shareholder's Return)로 측정하기 시작하면서 3년 단위가 아닌 1년 단위로 자사주 정책을 결정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현대모비스의 자사주 활용법을 두고 지배구조 개편 이슈와 맞물린 주가 부양 노력으로 풀이한다. 주주 환원책을 시작한 때와 지주사 체제 전환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 시기가 겹친다. 2018년 당시 지배구조 개편은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존속법인(투자회사)를 지주사로 삼는 방식이었다. 분할에 따라 기업가치 하락이 우려되면서 주주가치 제고 필요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향후 자사주가 오너 일가의 지배력 높이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의선 회장이 지주사 후보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최대한 많이 보유해야 그룹 지배력이 높아진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자사주와 맞교환하는 방식이 거론되는 이유다. 더불어 분할법인(사업회사)이 신주를 발행할 때 자사주를 보유한 존속법인은 신주 배정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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