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자금조달 수단 선택폭이 좁아지는 것은 손발이 묶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용카드사들이 요즘 그렇다.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 비하면 최악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회사채(여전채) 수급 상태가 평년보다 못하다.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사들은 주로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영업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2~3년간 조달내역을 보면 회사채보다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비중이 부쩍 높아졌다. 차입 잔액의 10%도 안 되던 게 요즘은 30%를 웃돈다. 특히 중소형사로 분류되는 우리카드, 하나카드의 경우 1년 내 만기도래 차입부채 비중이 35~38%로 업계 평균(33%) 대비 높다. 만기가 짧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차환과 상환주기가 빨라져 유동성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CP 발행이 대폭 늘자 시장 왜곡의 주범이란 눈초리도 날카로워졌다. 장기 CP는 사실상 회사채와 동일하면서도 단기 신용등급으로 장기자금을 끌어온다는 점에서 장·단기금융시장 왜곡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업권 특성상 상시적으로 발행하다보니 물량이 많은 카드사들에게 안 좋은 시선이 몰린다.
신용카드사들도 할 말은 있다. 최근 만난 카드사 재무분야 실무자는 "채권시장 상황이 어려워져 좀 더 싼 금리로 단기물을 늘리긴 했으나 장기 CP 확대 근간에는 금융당국의 권고도 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 2020년 때 회사채 조달이 90%대에 이르던 카드사들에게 조달 다변화를 권고한 게 금융당국이다. 당시 회사채 시장이 어려워진 탓이다.
문제는 '차 떼고 포 뗀' 상태에서 다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2015년 정부가 카드사의 외화 차입을 제한하는 행정조치를 종료했음에도 여전히 신규 발행에 한해 기획재정부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실제 승인을 받는 게 어려운 만큼 카드업계는 외화채 차입의 단계적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AAA급 초우량물인 은행채와 한전채가 늘면서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이 발생했다. 비교적 등급이 낮은 카드사들(AA급)은 뒷전으로 밀리면서 만기가 짧은 전단채나 CP 발행을 늘려 대응해야 했다. 부채 만기 단기화가 악순환처럼 일어나는 이유다. 자산유동화증권(ABS)도 현행법상 할부금융 등 본업 자산 기반으로만 발행해야 하는 탓에 주요 조달수단이 되기 어렵다.
배려 없는 정책으로 손발이 묶인데다 금리상승과 업황악화로 카드사의 조달부담이 커지는 형국이다. 이렇게 CFO들의 선택폭을 좁혀놓고서 다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내년 4월 총선시즌이 도래할 경우 카드사 수수료율 인하 압력도 거세질 게 뻔하다. 수수료를 낮출 거면 조달 등에는 어떤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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