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내 재계에는 ESG위원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ESG경영 확대 분위기 속에서 주요 기업들이 경쟁하듯 설치에 나선 결과다.
하지만 모든 ESG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기업들이 1년동안 ESG위원회를 개최한 횟수는 평균 2.9회에 불과했다. 분기당 1회가 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기아의 활동이 눈에 띈다. 지난해 6회, 올 1월부터 4월까지 모두 다섯차례 회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계열사간 거래나 주요 주주와의 거래 등 내부거래 관련 안건을 심의하며 내부통제 강화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사실 현대차그룹 내에는 'ESG위원회'란 이름을 가진 조직이 없다. 대신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에는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기아는 작년 3월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이제 막 1년3개월이 지났다.
기존 내부거래 투명성 제고와 주주권익 보호 역할에 ESG정책, 산업 안전 및 보건 심의 기능을 추가했다.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경영 실천 등에 대한 보고도 받는다. 이 같은 까닭에 여타 기업의 ESG위원회보다 커버하는 범위가 넓다.
특히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거듭나며 송호성 대표가 멤버로 합류했다. 이전까진 사외이사로만 구성했지만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회사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대표이사를 추가했다. 조직의 역할과 규모 모두 커졌다는 의미다. 현재 위원회는 사외이사 5명과 사내이사 1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속가능경영위원회는 출범 첫해인 지난해 모두 여섯차례 열린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는 4월까지 다섯차례 열렸다. 적극적으로 회의를 개최해 안건을 논의하고 관련 보고를 받는다는 얘기다. 1년에 한두차례 열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보수위원회보다 활동이 활발하다. 위원회 규정상 분기별 개최가 원칙이지만 이를 한참 뛰어넘는다.
최근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ESG위원회를 설치만 하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리더스인덱스가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사 169개사의 작년 이사회 구성·활동 내용을 분석한 결과 ESG위원회(지속가능경영위원회 포함)를 설치한 기업은 52%인 88개사였다. 작년 상반기(49개사)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들이 개최한 회의는 251회에 그쳤다. 기업별로 평균 2.9회 회의를 열었다는 의미다. 상정 안건은 567건으로 회의당 평균 2.2건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10회, 현대차 8회 등 그룹 전반이 위원회 활동에 열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ESG평가기관 서스틴베스트 역시 ESG위원회 설치 기업의 65%가 회의를 연 4회 미만으로 개최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ESG경영이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결의한 안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내부거래와 관련된 내용이다. 기아는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의 사적인 이익 목적 내부거래·자기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내부거래에 관한 사항을 지속가능경영위원회와 이사회가 살피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가 사전 심의해 이사회에 넘기는 형태로 내부 통제장치를 갖춰뒀다.
위원회는 내부거래 현황에 대해 보고받고 세부내용에 대한 자료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법령과 내규를 위반하는 거래에 대해 이사회에 시정조치를 건의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인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역할도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맡는다. 현대차와 기아 등 주요 계열사들은 주주와 회사간 브릿지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해당 이사는 주주들로부터 예비후보를 추천 받아 선임한다.
기아 역시 올 3월 해당 제도를 통해 신현정 후보를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그리고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주주권익보호 업무를 맡겼다. 신 이사는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지배구조와 주요사업 변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주주들의 제안, 의견 등을 수렴한다. 이사회에 이를 전달하고 주주이익 확대를 고민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