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를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궁금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기업이 차입 관련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다. 사업 확장을 위해 타인자본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의 자금을 어디서, 얼마나 잘 빌렸는 지는 곧 기업의 부채 건전성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투명성이 곧 지배구조 등급과 ESG등급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각 기업의 차입금 관련 공시 현황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각 분기(연도) 말 기준 차입처와 차입 조건(금리) 잔액 등을 공시한다. 다만 기업마다 공시의 구체성은 모두 다르다.
시가총액 3위 기업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차입금 관련 주석 공시가 비교적 구체적이다. 작년 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차입처와 차입금 사용 내역, 이자율, 당기·전기 말 잔액을 모두 공시했다.
특히 차입처의 경우 신디케이트론을 제외하면 차입을 일으킨 금융기관을 국내·외 대부분 투명하게 밝혔다. 단기차입 뿐만 아니라 장기차입금과 회사채 발행 내역 확인도 쉽게 가능하다.
반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비교적 구체성이 떨어진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업보고서 상 단기차입금의 차입처를 '우리은행 등'·'씨티은행 등'으로 작성했다. 대표 차입기관을 적고 나머지 금융기관은 '등'으로 대신해 구체성이 비교적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연 이자율도 무담보차입금의 경우 0~30%로 공시해 구체성이 떨어진다. 차입금 규모와 금리 조건 등을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알기 힘들다.
2위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은 외화대출로 이뤄져 있는 장기차입의 경우 차입처와 이자율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차입처도 '등'이나 '외'로 생략하는 부분 없이 모든 차입처와 차입처별 차입금 잔액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다만 단기차입금의 경우 차입처 란에 'KDB 등'이라고 작성했다. 이자율 역시 '1.2% 외'로 작성하면서 장기차입금보다는 구체성이 떨어졌다.
시총 1~3위 기업 외 10대 그룹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은 앞선 세 곳보다 차입금 관련 공개 내용이 적은 대표적인 곳이다. 한화솔루션은 대표 차입처 한 곳과 기·전기 말 차입 잔액만을 공개했다. 통상 공개하는 차입금별 연 이자율도 공개하지 않았다.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업들은 금융감독원이 발표하는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에는 "투자자가 회사의 재무상황, 재무상황의 변동내용 및 영업의 결과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라면서 "공시서류작성기준일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직전 사업연도 말 현재 차입금 규모, 차입 요건의 계절적 요인, 차입금의 만기현황 및 제휴된 차입처에 관한 정보, 차입금의 사용에 대한 내용 등을 작성한다"고 명시돼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 지는 안내하고 있으나 그 구체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차입금 내역의 구체성을 밝히는 것은 사실상 기업의 자율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정보 공개의 투명성을 중시하는 기업의 경우 주석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이지만 가이드라인에 맞춰 최소한의 내용만 공개하는 곳도 여전히 많다"라면서 "비단 차입금 관련 주석 뿐만 아니라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현금흐름표와 관련해 기업들이 공개하는 범위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기업 공시 구체성 제고와 이에 따른 투명성 확보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권고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KCGS는 ESG모범규준 개정판을 통해 "기업의 영위에는 주주 뿐만 아니라, 근로자, 고객, 협력사, 채권자 및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기업의 이해관계자도 필요한 기업 정보에 대한 원활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