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주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 규모가 작은 소액주주를 소위 '개미'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업공개(IR), 배당 강화, 자사주 활용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힘주고 있다. 더벨이 기업의 주주 친화력(friendship)을 분석해봤다.
주가는 언제 오를까?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가 워낙 많지만 회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가 현 상황과 목표,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회사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주가 상승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주주 친화의 기본이 주주와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볼 때 LG화학은 그 어느 회사보다 주주 친화적이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반 년 사이 두 차례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투자자를 만났다.
LG화학이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2020년 LG에너지솔루션 출범 과정에서 주주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적분할에 따른 주가 하락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를 결정하고 알리는 과정은 당시 시가총액 2위를 넘보던 LG화학과 어울리지 않게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 분할 진통, '소통 강화' 계기 됐다
LG화학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기업 가운데 하나다. 배터리 사업에 대한 기대로 100만원도 넘겼던 주가는 현재 50만원대 안팎을 오가고 있다. 주주들의 시선도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주주들 앞에 직접 나서는 건 아무래도 부담일 수밖에 없지만 신학철 부회장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나서고 있다.
신 부회장이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 나선 건 모두 3차례다. 취임 7개월 뒤인 2019년 7월 처음 기자간담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 2년 동안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 부회장은 지난해 7월 공백을 깨고 기자간담회에 등장했다. 이어 7개월 만인 올 2월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투자자들과 직접 만났다.
그 배경에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이 있다. 2020년 하반기 이뤄진 LG화학의 전지사업본부 물적분할은 기업의 물적분할을 둘러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재계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당시 LG화학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투자자들과 소통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후 1시 분할 결정을 공시한 뒤 오후 4시 컨퍼런스콜을 열었으나 그 대상이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로 한정됐던 탓이다. 물적분할 발표를 전후해 외국인 및 기관 투자자는 비교적 차분했던 반면 개인 투자자의 패닉셀이 이어졌던 것 역시 개인 투자자의 정보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신 부회장은 물적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에서 직접 주주와 소통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소통에 미숙함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며 "개인주주들이 회사의 전략과 사업의 내용, 비전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접할 수 있도록 주주와 커뮤니케이션을 더 확대할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약속한다"고 밝혔다.
◇인베스터 데이에서 질의응답도 직접 소화
이후 행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신 부회장은 인베스터 데이에서 직접 기자와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근 주요 투자자들 앞에서 회사의 실적과 중장기 전략을 소개하는 인베스터 데이를 여는 기업 자체는 늘어나고 있지만 CEO가 직접 질문까지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현대차, 기아와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두 곳 모두 주주와 소통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인베스터 데이를 열었지만 CEO들은 발표만 했다. LG화학처럼 부정적 이슈가 불거졌을 때 CEO가 직접 나서는 일 역시 매우 드물다. 보통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곳도 주주서한 등을 통한 일방통행이 대부분이다.
기자간담회나 컨퍼런스콜, 인베스터 데이 등 대중에게 기업을 설명하는 모든 형태의 기업설명회는 CEO가 직접 나서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단순 실적 공개나 전망 제시를 넘어 기업을 이끄는 CEO가 직접 비전을 내놓고 이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간 CEO의 소통 기피는 국내 재계의 나쁜 관행으로 꼽혀왔다. CEO의 책임있는 한 마디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을 애매하게 둘러대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 부회장은 명확한 화법으로 시장의 의구심을 잠재우는 데도 힘쓰고 있다. 앞서 열린 인베스터 데이에서 다른 사업본부의 추가 분사 가능성을 일축한 게 대표적이다. 이밖에 다른 기업들이 외부에 잘 알리지 않는 M&A(인수합병)나 JV(조인트벤처) 설립 가능성 등도 직접 언급했다.
신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주주 소통에 나서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3M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3M은 핵심 경영진이 사업 전망과 각 사업별 중장기 계획, 재무적 목표 등을 매우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 부회장은 35년 가까이 3M에 몸담았다. 그는 LG화학 입사 당시 "글로벌 기업의 노하우를 한국 기업에 전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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