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X그룹 회장은 원래부터 저돌적 성향과 팽창 위주의 경영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문난 전략통으로 수십년 전에도 반도체 등 신사업 발굴에 관심이 많았다.
확장 의지는 여전히 분명하다. 작년 LX홀딩스 주총에서 "신사업발굴에 집중해 포트폴리오를 건전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흔 줄이지만 아직 왕성하게 활동 중이기 때문에 아들 구형모 LX MDI 부사장이 사업을 물려받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남아 있다. 과감한 투자가 예상되는 시점, 구 회장은 '싱크탱크(Think tank)'의 수장 역할을 구 부사장에게 맡겼다.
구 부사장은 1987년생으로 오너 경영인 대열에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커리어 대부분은 LG전자에서 쌓았는데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 2014년 LG전자 대리로 입사했다. LX그룹이 떨어져나오기 전까지 줄곧 LG전자에서만 일했으며 당시 경영전략과 신사업개발, 전략기획 등을 맡았다. LX그룹이 독립한 2021년 5월 LX홀딩스 상무로서 임원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LX홀딩스에서 담당했던 업무는 경영기획이다. 부임 이듬해인 2022년 3월 전무가 됐고 같은 해 말 LX MDI가 신설되자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다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LX MDI는 구 부사장과 서동현 LX판토스 상무가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LX MDI는 지난해 말 설립된 만큼 아직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이 같은 LG경영개발원(LG MDI)을 통해 역할을 더 뚜렷이 짐작해 볼 수 있다. LG경영개발원은 LG경영연구원, 임직원 교육기관인 LG인화원을 합쳐 출범한 법인이다. 4세대인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한 뒤 AI 연구조직인 'LG AI연구원'을 추가해 역할을 키웠다.
LG경영개발원 산하에 있는 LG경영연구원도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 성격이 달라졌다. 기존엔 국내외 경제, 산업 연구에 초점이 있었다면 지난해부터 그룹 내부의 경영 컨설팅에 집중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2022년 1월 사명을 LG'경제'연구원에서 LG'경영'연구원으로 27년 만에 바꾼 데서도 달라진 방향성을 드러냈다.
LX MDI 역시 개편 이후의 LG경영개발원을 본 딴 것으로 보인다. 사업분야를 보면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컨설팅 △계열사 리스크 관리 체계화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한 계열사 사업 방향과 전략 수립 지원 △인재 육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법인이다.
경영 참여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구형모 부사장이 계열사 업무와 문제점 전반을 파악하기에 적격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큰 그림을 파악하고 다시 그리기 위해서도 시야각이 좋은 자리다. 현재 LX MDI는 각자 대표인 서동현 상무 외에도 노진서 LX홀딩스 부사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구 부사장의 경영수업을 돕는 중이다.
노 부사장은 구본준 회장과 함께 LX홀딩스 대표이사로 지주사를 이끌고 있다. 구형모 부사장이 LX홀딩스에서 경영기획담당으로 일할 때 CSO(최고전략책임자)로서 직속 상사였던 인물이다.
구본준 회장과도 인연이 깊다. 구 회장은 LG전자 대표이사에서 LG 미등기임원으로 2016년 3월 이동했다. 당시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았으며 같은 시기 노 부사장도 시너지임원으로 선임됐다. 이후 경영전략임원, 기획팀장을 거친 노 부사장은 구 회장이 2019년 고문으로 물러난 뒤 다시 LG전자로 옮겼다. 그러다 LX그룹 출범과 함께 구본준 회장의 부름에 응했다.
서동현 상무의 경우 LX MDI 각자 대표인 만큼 노 부사장보다 더 지근거리에서 구형모 부사장을 보좌한다. 과거 2015년부터 약 4년간 LG경영개발원 정도경영TFT(태스크포스팀)에 있었고 이후 LX판토스에서도 경영진단·개선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경영 컨설팅 업무에 적절한 이력을 갖췄다. 구 부사장에겐 두 측근이 일종의 '보조 바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구 부사장의 지휘 아래 LX MDI는 투자를 위한 안테나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딱히 경영권을 다툴 경쟁자가 없는 만큼 구 부사장은 내정된 차기 총수다. 하지만 승계과정에서 명분과 입지를 단단히 굳히려면 그룹의 몸집 확장에 기여하는 것만큼 분명한 길도 없다.
LX그룹은 지난해 말 전체 자산이 11조원, 매출은 25조원을 넘으면서 기업집단 순위 44위를 기록했다. 2년 만에 자산과 매출이 약 3조원, 9조원 각각 불었다. 그러나 굴지의 LG그룹에서 명실상부한 2인자였던 구본준 회장 눈에 차기엔 아직 모자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