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지 오래다. 애초 비상근 등기임원에 포함돼 있었지만 약 10년 전부터는 이사회에서 이름이 빠졌다.
하지만 이사진 구성을 보면 이 총괄의 영향력은 여전히 의심하기 어렵다. 가족회사와 다름없이 출발한 SM은 회사가 커가면서 표면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사진 대부분은 이 총괄의 입김이 미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2인자 김경욱 대표, 석연치 못한 퇴진
SM은 2000년 김경욱 대표이사 체제에서 코스닥에 입성했다. 김 대표는 초기 SM의 2인자로 2005년까지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1998년부터 SM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을 사실상 대리하는 역할을 했다. SM을 떠난 지금은 직접 설립한 씽엔터테인먼트와 골든구스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있다.
김 대표를 제외하면 당시 이사진은 전부 가족으로 꾸려져 있었다. 이수만 총괄, 그의 형수인 박영숙씨가 비상근 이사직을 맡았고 이 총괄의 형 이수영씨는 감사를 담당했다. 이 총괄과 특수관계자를 포함하면 회사 지분율이 75%에 달했던 만큼 이사진 구성에서도 가족회사의 성격이 드러났다.
하지만 상장 직후 진행된 유증으로 이 총괄의 지분율이 희석됨과 동시에 이사진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 총괄과 김경욱 대표를 제외하고 등기임원이 2001년 모두 물갈이됐다. SM의 오랜 대표 프로듀서인 작곡가 유영진씨가 이사로 합류한 것도 이 시기다.
이듬해는 기존 사내이사에 더해 김영민 현 SM스튜디오스 대표, 한세민 현 에이아이엠씨 대표가 추가 선임됐다. 각각 가수 보아씨의 미국과 일본 매니저를 담당했으며 SM엔터에서 일종의 개국공신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진용을 갖춰가던 SM 이사회는 2005년 큰 변화를 맞았다. 김경욱 전 대표가 돌연 해임됐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김 전 대표가 다른 주주나 임원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 보유 주식을 처분해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등 대표이사로서 부적합한 행동을 했다는 점을 해임 이유로 들었다.
당시 김 전 대표 측이 “최대주주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자 해임된 것”이라며 “SM은 업무와 회계에서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주장하는 등 잡음이 시끄러웠다. 김 전 대표와 이 총괄의 오랜 인연이 개운치 않은 의문만 남기고 끝난 셈이다.
◇이수만 총괄, 일선 떠났지만…투명성 이슈 두각
김 전 대표의 해임으로 생긴 공석은 김영민 대표가 메웠다. 당시 이사였던 한세민 대표가 아래에서 해외사업과 IR을 총괄하는 형태였다. 또 유영진씨가 미등기임원으로 물러난 대신 남소영 당시 이사(현 키이스트 대표)가 새 등기임원에 올랐다. 남 전 이사는 SM이 일본 진출을 노리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가수 보아씨가 일본 진출을 준비하면서 이 총괄이 발탁했는데 직접 발로 뛰며 SM재팬을 키운 것으로 잘 알려졌다.
2010년, 이 총괄이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며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회사 측은 그가 향후 소속가수들의 해외진출 등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총괄은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SM과 프로듀싱 위탁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영활동에 대한 지배력이 여전했다.
이후 수년간 이사회 멤버에 소소한 들고남만 있었던 SM은 2017년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분야별 전문성을 살려 경영 안정성을 제고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한세민 대표와 남소영 전 이사가 첫 공동 대표에 올랐으며 기존 단독대표였던 김영민 대표는 그룹 총괄사장으로서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한세민 대표는 2019년 중순 사임하고 다시 김영민 총괄사장이 빈 자리를 채웠다. KB자산운용이 주주제안을 통해 라이크기획과 SM의 계약관계에 문제를 제기했던 시기다. 이 총괄의 사익 편취, SM의 경영 투명성을 두고 회의적 시선이 집중되면서 파문이 적지 않았지만 회사 측은 한 대표의 사임 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지배구조 개선 숙제, 이사회 독립성
지금의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 체제가 된 것은 2020년이다. 이 대표가 CEO, 탁 대표가 CMO(최고마케팅책임자)를 맡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성수 대표가 이 총괄의 처조카라는 점이다. 이 대표는 SM에서 프로듀싱 조직인 A&R (Artist & Repertoire) 팀장, 프로듀싱 본부장 등을 거쳐 2017년 처음 음악제작 총괄로 이사회 멤버에 합류했다. 이후 소속 가수의 노래, 콘셉트를 정하는 일을 총괄해왔다.
그를 포함해 현재 SM의 이사회는 탁영준 대표, 박준영 이사 등 사내이사 3인과 사외이사 1인(지창훈 이사), 총 4인으로 구성돼 있다. 탁 대표의 경우 SM의 말단 매니저부터 시작해 대표 자리까지 올랐으며 지창훈 사외이사는 이 총괄의 경복고 동창이다. 박준영 이사 역시 SM 설립 초기부터 이 총괄과 함께 했다. 사내이사 대부분이 이 총괄의 오랜 측근이거나 가족인 셈이다.
감사 역시 독립성 문제가 여러 차례 불거졌다. 올 초까지 감사를 맡고 있던 이강복 감사는 SM에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사외이사를 맡다가 3번 연임이 안되자 2016년부터 감사로 재직했다.
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 이수만 총괄과 같은 1952년생, 서울대 입학(1971년) 동기이기도 하다. 2003년 7월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문화산업포럼에서 이 총괄과 20년 가까이 공동 대표를 담당하는 등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또 작년 3월 사임한 채희만 이사의 경우 2011년부터 10년이나 사외이사직로 있었다. 사외이사에서 다시 감사에 오른 것이나 10년 이상의 장기 사외이사 수행은 모두 감사 또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해치는 요소다.
감사의 독립성 문제는 이제 일단락된 상황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곽준호 감사 선임안이 지난달 주총에서 가결됐기 때문이다. 다만 곽 감사의 역할은 라이크기획과 SM의 계약이 투명한지 여부 등을 살피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감사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그간 비판을 받아온 지배구조 문제가 일거에 해결됐다고는 볼 수 없다"며 "지금의 SM 이사회 구성에서 이수만 총괄의 영향력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