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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사 거버넌스 분석

퍼스트펭귄, SM엔터의 '명암'

①연예기획사 최초 상장, 산업 기틀 마련…투명성은 물음표

고진영 기자  2022-04-27 13:26:23

편집자주

국내 매니지먼트사업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반이다. 창업자가 휘두르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산업이 커가는 과정에서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ESG 바람과 함께 엔터사 특유의 제왕적 시스템도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이들의 지배구조와 히스토리를 더벨이 면밀히 들여다본다.
1960년대 팝의 헤게모니는 ‘모타운(Motown)’이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에 세워졌던 작은 인디레이블이 그 시작이다. 설립자 베리 고디는 자동차공장의 조립공정을 음반 제작과정으로 접목시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프로듀서-작곡가-연주자-뮤지션으로 이어지는 관리체계를 짜고 같은 건물과 공간에서 창작, 녹음, 안무, 예절까지 트레이닝해 가수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모타운 사운드’라 불리는 음악을 양산했는데 흑인음악이 팝을 지배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베리 고디는 모든 과정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최고 결정권자로 막강한 입김을 행사했다.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성장해온 역사에서 창업자의 역할도 베리 고디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연예기획산업 형태가 갖춰지기까지 첫 기틀을 짠 이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다.

◇한국판 '베리 고디'를 노리다

이수만 총괄은 70년대 가수로 활동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시절 로봇 공학을 연구했는데 정작 매료됐던 대상은 미국의 음반산업이다. 전문화된 시스템의 위력을 깨달은 그는 1989년 송파에서 SM엔터의 모태 SM기획을 설립했다.

SM기획은 ‘현진영과 와와’로 성공을 거뒀지만 이후 현진영씨의 대마초사건으로 부도 위기에 빠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전하던 SM에 재기의 초석을 마련해준 변곡점이 10대 대중문화 공략이었다.

이 총괄은 철저한 시장조사로 10대들의 특성을 고려해 가수를 선발하고 그룹을 꾸렸다. 1996년 H.O.T, 1997년 S.E.S, 1998년 신화, 2000년 보아가 연속으로 데뷔해 줄줄이 히트하면서 SM은 아이돌 기획사로 업계에 획을 긋는 성취를 이뤘다. 이 총괄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던 그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불안정한 모험산업의 성격이 짙은 연예기획사업의 다각화를 꾀한 점도 이 총괄과 SM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괄은 "산업이 발전하려면 자본이 축적돼야하고 기업 경영이 투명해야 한다"며 기업공개(IPO)를 서둘렀다.

SM은 2000년 4월 연예기획사 중 최초로 주식시장에 입성했다. SM의 상장이 엔터테인먼트사의 기업화 과정을 앞당기고 산업을 체계화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에 위치해있던 SM타운.

◇지분율 축소에도 여전한 영향력…투명성 의문

그러나 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SM은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SM으로부터 이 총괄의 개인회사에 상당한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율만 보면 꾸준히 축소됐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상장 초기 SM의 지분구조를 보면 이 총괄의 가족회사와 다름없었다. 그의 지분이 66.99%에 달했고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지분율은 74.32%였다. 하지만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지분도 차츰 축소됐다. 그는 상장 직후인 2000년 지분율 희석을 감내하고 신주 모집에 나선다. 총 72억 원의 신규 자금을 수혈 받는 대신 지분율은 53.5%로 급감했다.

주식 상장으로 지분 현금화 기회가 열리자 이 총괄은 이듬해부터 보유 지분을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상장 1년 만에 3.22%의 지분을 매각한 그는 총 10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2005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10%가 넘는 주식을 양도하면서 처음으로 지분율이 30% 대로 떨어졌다. 일본 시장에서 동방신기와 보아의 성공으로 주가가 고공행진을 했던 시기다.

2007년, 이 총괄의 지분은 26.75%까지 희석됐으나 2004년부터 지분을 보유해온 일본 협력사 '에이벡스(AVEX)' 측이 이 총괄의 지배를 지지했다. 2007년 말 기준 에이벡스는16.71%의 지분을 보유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2010년 말 변경됐다. 당시 이 총괄이 에이벡스 측의 지분을 직접 사들였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취득에도 불구하고 판당고코리아 합병 발행 신주와 임직원 주식매수선택권행사 주식수가 워낙 많아 지분율은 27.75%에 그쳤다. 보유 지분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이후에도 주식 매도는 계속됐다. 지난해 말 기준 이 총괄의 지분은 18.9%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이 6.16%,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Group AG)가 4.73%를 쥐고 있다.

첫 상장 때와 비교하면 이 총괄의 지분율이 3분의 1로 쪼그라든 셈이다. 대외적으로도 이 총괄은 경영에서 손을 뗀지 오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을 의심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이사진에 여전히 친인척과 측근이 포진해 있어서다.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한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라이크기획은 이 총괄의 개인회사로 상장 전부터 만들어졌다. 음반 자문과 프로듀싱 용역을 맡으면서 상장 이후 총 15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챙겼다.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이 총괄의 오너십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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