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을 틀어주는 LP바에 얼마 전 처음 가봤다. 빼곡히 꽂힌 레코드판이 낭만적이었다. 제목을 적어내고 기다린다. 종종 안나오는 노래도 있다고 하니 사장님 취향이 반영되는 모양이다. 요청곡이 비어 있으면 알아서 골라주는데 그때마다 분위기에 꼭 맞았다. 일련의 과정이 대화처럼 느껴졌다.
작은 가게긴 해도 손님들 입맛을 일일이 맞추기 까다로울 것 같았다. '계속 잘됐으면 좋겠다'. 감상 젖은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주크박스 커뮤니케이션(?)에 꽤 능숙한 사장님이 분명했다.
기업의 주크박스는 누구 담당일까. IR(Investor Relation)은 등장한 역사가 짧은 편이다. 1953년 제너럴 일렉트릭에 처음 관련부서가 만들어졌다. 이때만해도 홍보의 영역으로 분류돼 비공개인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 스캔들로 불리는 엔론(Enron)의 파산이 재계를 뒤흔들면서 후폭풍이 몰아쳤다.
엔론은 6억달러의 이익을 과대계상하는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다가 2001년 파산, 주주들에게 천문학적 손해를 입혔다. 결국 이듬해 투자자보호를 위한 ‘SOX법’이 만들어졌는데 IR도 영향을 받았다. 일방통행에서 투자자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쌍방향 소통으로 추세가 변했다. 기업이 정해둔 노래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신청곡을 받고 피드백도 내놓는 다는 뜻이다.
그럼 DJ는 누가돼야 하는지 글로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자. 맥킨지가 조사한 결과 대세는 CFO로 빠르게 기울었다. IR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고 답한 CFO의 비율은 2016년 10%대에 불과했지만 고작 2년 만인 2018년 46%로 뛰었다.
게다가 맥킨지는 팬데믹 이후 IR에서 CFO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보고 있다. 시장이 불안한 만큼 CFO가 직접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사모펀드 YFM의 카리아 CFO 역시 “상황이 나쁠수록 CFO가 투자자들과 정기적이고 열린 대화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통 채널도 오프라인으론 역부족이다. 브런즈윅(Brunswick)의 설문에 따르면 투자자 절반은 C레벨 경영진의 의견을 찾아보기 위해 유튜브 같은 디지털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여전히 시대적 흐름에 둔감한 기업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합병 뒤 개최한 첫 IR에 CFO는커녕 임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KCC 계열사들, E1은 아예 IR 자료를 발표하지 않고 셀트리온 3형제는 IR 일자와 횟수가 공시대상에서 빠져 있다.
IR의 형태는 앞으로 10년간 더 급격한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예전 방식을 고집해선 생존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뒷배경 잡음으로 전락해선 안돼(So don't become some background noise)'. 사장님이 들려준 ‘라디오 가가’의 가사. 하지만 라디오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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