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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원칙 '집중투표제 배제'…전자투표제만 도입

[독립성]⑨전 상장사, 소수주주 권리행사 배려한 집중투표제 미실시…타기업도 도입 꺼려

양도웅 기자  2024-03-04 15:26:26

편집자주

이사회는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동시에 최고 감시감독기구다.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뤄지고 이에 대한 책임도 이사회가 진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주주와 임직원, 정부, 시민사회 등 한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이사회에 높은 독립성과 전문성, 투명성, 윤리성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THE CFO가 이사회의 A부터 Z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현대자동차그룹 12개 상장사는 모두 전자투표제는 실시하고 집중투표제는 배제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 많은 기업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실시를 꺼리는 점을 고려 하면, 일반적 수준의 소수주주 권리를 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투표제란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 등을 통해 안건에 차반을 표시할 수 있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란 다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 예정 이사의 수만큼 부여된 의결권을 이사 후보 1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제도다. 과거 여러 정부에서 소수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검토한 바 있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를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THE CFO가 현대차그룹 12개 상장사의 최신 사업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모든 상장사는 2020년 전후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상법 제368조의4에 따르면 기업은 이사회 결의로 주주가 주총에 출석하지 않고도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상법은 전자투표제 도입과 실시를 이사회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지만, 한국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 사항'에 전자투표 실시 여부를 밝히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업에 전자투표제 채택을 권고하는 것으로 현대차그룹 12개 상장사는 이를 모두 준수하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온라인과 모바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반면 현대차그룹 12개 상장사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도입·실시하는 곳은 없다. 집중투표제는 전자투표제보다 소수주주들의 권리를 더 보장하는 투표제도로 평가된다.

가령 주주가 A와 B, 2명으로 구성된 기업이 있다고 하자. A는 지분 60%(60주), B는 지분 40(40주)%를 보유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데 2명은 A가 추천했고 1명은 B가 추천했다. 일반투표제에서는 앞선 2명의 이사는 60% 찬성과 40%의 반대가 나오고, 1명의 이사는 60% 반대와 40% 찬성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배주주가 원하는 이사로만 이사회가 구성된다.

집중투표제는 다르다. 3명의 이사를 선임하기 때문에 1주당 의결권 3개가 부여된다. A는 180개 의결권을, B는 120개 의결권을 갖는다. A와 B는 보유한 의결권 전부를 한 이사에게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집중투표제다. 전략만 잘 세운다면 B는 일반투표제 때와 다르게 본인이 추천한 이사의 선임을 통과시킬 수 있다. A가 추천한 이사의 선임을 막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집중투표제는 국내외에서 소수주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는 IMF 외환 위기로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을 필요성이 커지자 1998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관련 조항이 추가됐다. 하지만 기업이 정관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배제하는 조항을 넣으면 집중투표제 실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그룹 12개 상장사는 정관에 모두 집중투표제 배제를 못박아두고 있다. 대표 계열사인 현대차는 지난해 5월 발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당사는 정관 제22조를 통해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며 "이사 후보 선정과 선임 과정에서 소액 주주 의견을 반영할 기회를 제공하고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상법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추가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끝내 무산됐다. 소수주주의 권리 강화와 지배주주의 전횡 방지를 위한 목적이지만 해외 투기 세력이 이를 이용해 기존 경영권을 흔들면 기업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반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집중투표제에 대한 논의는 과거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공시해야 하는 기업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비율은 4.0%밖에 되지 않는다.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15개 항목 중 가장 낮은 준수율을 보인 게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였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투기자본 세력 등이 이사회와 기업 경영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았다고 미준수 사유를 제시했다"며 "집중투표제 대신 소수주주 의견을 청취하고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기재한 기업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은 사외이사 가운데 '주주권익 보호담당 이사' 1명을 선임해 이사회와 주주 간 소통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기고 있다. 또한 의결권 행사가 어려운 주주들에게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를 이용하도록 독려하는 방식으로 소수주주들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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