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팔고 싶어서가 아니다. 어느 기업에게나 애써 키운 자기 사업을 지켜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만 도저히 전망이 보이지 않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땐 미련 없이 손에 쥔 사업을 놓아야 하는 것이 기업이 할 일이다. 최근 모태사업과 주력사업을 시장에 팔며 사실상 차포를 다 뗀 SKC의 상황이다. 그간 꾸준히 수익을 내왔더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사업 재편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SKC의 베팅은 어떤 판단에서 이뤄졌으며 그 선택은 무슨 미래를 보여줄까. SKC의 현 상황을 더벨이 조명해 본다.
지난 2021년 '주포' 화학 사업과 작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도 SKC는 자산 6조원 시대를 열었다. 우물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탈정(脫井)'을 선언한 이후 4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자회사 SK넥실리스 덕분이다. SKC 인수합병(M&A) 사상 가장 많은 돈(1조1900억원)을 투입한 후에도 시설투자, 라인 증설, 북미 진출 등의 지출 행보를 이어가며 사세를 확장해 왔다. 실제 SK넥실리스의 자산 총계는 2020년 6000억원, 2021년 1조2000억원, 2022년 1조8000억원이다.
다른 요인들도 더 있다. 겉으로 보기에 반도체 소재 부문이 외형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둘 모두 M&A로 SKC 품에 안긴 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해외 공장(자회사 앱솔릭스) 건설에 나선 것도 닮았다. 반도체 소재 부문에 2027년까지 예정된 자본적지출(CAPEX) 역시 SK넥실리스(1조8000억원)와 거의 일치한다.
숫자로 봐도 기여도가 눈에 띈다. 반도체 소재 부문은 국내와 해외에 10개 자회사를 두며 올해 1분기 말 기준 9129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3년 간의 추이를 보면 2020년 5620억원, 2021년 7157억원, 2022년 9662억원이다. SK엔펄스가 600억원 가까이 몸집을 불린 데 더해 지난해 글라스 기판 사업자 앱솔릭스를 인수한 덕이 컸다.
성장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2027년 중장기 로드맵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 부문 목표 매출은 3조원으로 SK넥실리스에 비해 4조원가량 뒤처진다. 다만 CMP패드와 블랭크 마스크 등이 동박보다 더 높은 수익성을 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또 최근 반도체 테스트 업체인 ISC를 5225억원에 인수하며 또 한 번의 자산 성장도 일궈낸 상태다.
또 다른 지점에는 친환경 소재 사업이 있다. 몸집 불리기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친환경 소재 사업은 그야말로 '갑툭튀'다. 2년전 친환경 생분해 합작사 에코밴스와 친환경 생분해 라이멕스 소재 기업 SK TBMGEOSTON(에스케이티비엠지오스톤)이 설립돼 종속 기업으로 추가됐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각각 626억원, 71억원의 자산 총계를 기록 중이다.
이 사이 '주포'의 존재감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예컨대 같은 기간 SKC의 화학사업 부문 자산 총계는 1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말 1조8000억원 수준이던 때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SKC는 최근 투자자 대상 인베스터 데이에서 지속적인 자산 유동화 방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자산 감소폭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C의 경우 자산 유동화를 통해 조달할 자금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대신 그만큼 신규 사업을 영위하는 새 기업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여 전체적인 자산은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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