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팔고 싶어서가 아니다. 어느 기업에게나 애써 키운 자기 사업을 지켜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만 도저히 전망이 보이지 않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땐 미련 없이 손에 쥔 사업을 놓아야 하는 것이 기업이 할 일이다. 최근 모태사업과 주력사업을 시장에 팔며 사실상 차포를 다 뗀 SKC의 상황이다. 그간 꾸준히 수익을 내왔더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사업 재편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SKC의 베팅은 어떤 판단에서 이뤄졌으며 그 선택은 무슨 미래를 보여줄까. SKC의 현 상황을 더벨이 조명해 본다.
현재 SK㈜ C&C에 몸 담고 있는 피성현 전 경영지원부문장은 SKC 사업재편 역사에서 지금도 곧잘 회자되는 인물이다. 지난 2020년 SK넥실리스 인수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맡아 인수 자금 등 조달 계획을 주도했다.
이때 PI필름 제조 자회사 SKC코오롱PI를 매각해 3040억원을 챙겼고, 또 다른 자회사 SK피아이씨글로벌 지분 49%와 SK바이오랜드 지분 전량을 팔아 각각 5358억원, 1205억원의 재원을 쌓았다. 그는 SKC의 사업재편 비전을 직접 투자자들에게 설명하고 다니며 투자와 조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엔 최두환 경영지원부문장이 피 전 부문장의 뒤를 밟고 있는 후배로 꼽을 만하다. 2020년 말 SKC 비즈니스 모델(BM) 혁신 2단계 시작과 함께 CFO 자리에 올랐다. '이차전지·반도체 소재·친환경 소재' 등 좀 더 본격적인 사업재편을 이끌고 있는데 투자자 소통 능력은 물론 자금 조달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11월 필름 사업부 매각으로 1조6000억원을 실탄을 확보했으며, 올 들어서는 자회사 SK피유코어 경영권과 반도체 소재 자회사 SK엔펄스 파인세라믹스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각각 5000억원, 4000억원 안팎에서 협상이 진행 중이다. 절차가 마무리된다면 모든 매각 작업을 합한 금액만 2조5000억원이 넘는다.
시장에선 달라진 이름과 함께 유동화 방식도 변화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전략이 눈에 띈다. 오늘날은 전통 석유화학 사업의 불황 속에 매물은 많지만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SKC 화학사업은 주로 업황 타격이 적은 다운스트림 영역에 있지만 매물로서의 매력도는 역시 하락해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분할 매각' 방식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통매각 대신 특정 사업부나 자산을 따로 파는 전략이다. 이는 매수자의 인수자금 부담을 줄여줄 수 있어 매각 속도를 높이는 해법으로 여겨진다. 현재 실사 단계를 거치고 있는 자회사 SK피유코어와 SK엔펄스 역시 분할 매각 시도에 매수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특정 자산을 쪼개서 매각하는 것 자체가 SKC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SK넥실리스 인수로 대표되는 BM 혁신 1단계를 거치며 화학 사업부(현 SK피아이씨글로벌)를 물적분할한 뒤 매각한 적이 있다. 다만 일부 지분만 매각하는 형태라 이 경우 떼어 팔기가 비교적 쉽다고 평가된다.
다만 SK피유코어는 SK그룹 정유·화학 공장인 울산 콤플렉스에 공정 과정이 연계돼 있다. SK이노베이션 제품을 공급받아 폴리우레탄을 만드는 식이다. SK피유코어만 따로 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많았지만 SKC 측이 자체 공급망 확보 및 미쓰이화학과의 합작사(JV) 경력 등을 십분 강조해 매수자가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IB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SK피유코어가 울산 콤플렉스에 연계돼 있다고 보고 매각 시도 자체에 의문을 갖는 의견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SK피유코어가 미쓰이화학과의 합작사 출신이라는 점 등 회사가 독립적으로 운영된 기간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시장 내 매수자가 꽤 확보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C가 매각을 추진 중인 SK엔펄스의 파인세라믹스 사업부도 마찬가지다. 파인세라믹스 사업부는 2016년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매출을 끌어올리며 국내 1위 타이틀을 따낸 곳이다. 기존 반도체 소재 사업들과 점점이 많아 따로 내놓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사업 재편을 위해 과감히 분할 매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앞선 관계자는 "예전에는 '쪼개서 파는데 이걸 살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의 시선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현재 SK엔펄스 파인세라믹 사업부 딜이나 SK피유코어 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듯이 지금은 다 분할해서 (딜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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