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중 삼성SDI를 제외한 나머지 두 기업의 재무전략은 비슷하다. '벌크업' 중시다. 덩치를 불리기 위한 영양분(자금) 조달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양 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인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부사장과 김경훈 SK온 부사장은 동종업계 경쟁사에 각각 몸 담고 있지만 고민의 궤적은 비슷하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이다. '골든 타임'에 기업공개(IPO)는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신의 한 수'였다. 연결 현금흐름표에 따르면 작년 IPO로 LG에너지솔루션은 9조4919억원의 현금을 곳간에 채웠다. 연초 현금 수혈로 예고했던 투자들을 착착 진행했다. 심지어 모든 자본적지출(CAPEX)을 단행하고도 현금이 3조7000억원가량 남았다.
그렇지만 작년 IPO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작년만 투자하고 끝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보다 50% 많은 수준의 CAPEX 지출을 예고했다. 작년 연결 CAPEX가 6조2982억원이니 단순 계산으로 최소 올해 9조4473억원의 현금을 쓰겠다는 의미다.
IPO 덕으로 수조원을 충전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의 현금시재는 연말 기준 5조9380억원을 기록 중이다. 상당 수준이지만 보유 현금만으로는 CAPEX 대응이 안된다. 다시 말하면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급 IPO로 거둔 현금이 2년도 안되는 시점에 모두 소진될 예정이라는 의미다.
글로벌 최대 경쟁사인 중국 CATL의 성장세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올해 10조원에 가까운 CAPEX 지출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시장을 제외한 작년 LG에너지솔루션의 시장 점유율은 29.7%로 2021년 35.1%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 자리는 CATL이 채웠다. 작년 CATL의 시장 점유율은 22.3%로 아직 LG에너지솔루션보다는 낮지만 2021년 점유율(14%) 대비 무려 8.3%포인트를 끌어올렸다. 또 이 통계의 또 다른 핵심은 '중국 시장을 제외한' 수치라는 점이다.
CFO인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부사장에게는 분명 작년과 다른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업이익이 잘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이 부사장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는 희소식이다. 작년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이익으로 1조213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세액공제 예쌍금액(1003억원)을 제외한 영업이익으로 5329억원을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사업에서 창출되는 OCF를 토대로 매출채권·매입채무·재고자산 등 운전자본에 대한 통제가 이 부사장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일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LG에너지솔루션은 OCF로 3조4413억원의 현금을 뽑아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선제적 생산으로 운전자본투자가 크게 늘어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5798억원을 기록했다. 보유 현금과 OCF로 CAPEX 대응이 어렵다면 외부 조달로 이를 메꿔야 한다.
SK온의 김경훈 부사장도 고민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 정도가 이창실 부사장보다는 훨씬 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LG는 OCF를 내고 있고 SK는 영업활동에서 현금을 소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SK온의 OCF는 -5382억원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재고자산 증가는 SK온에게도 적용돼 NCF는 -2조955억원을 기록했다. 한해 CAPEX로는 4조8977억원을 기록해 잉여현금흐름(FCF)은 -6조9933억원을 기록했다.
유상증자로 그룹 안팎에서 2조9151억원의 현금이 유입됐지만 모든 사안을 두고 작년 한해를 놓고 봤을 때 약 3조8000억원 규모의 '현금 구멍'이 났다. 올해 7조원 투자를 예고한 SK온이 작년 하반기 미흡한 자금 조달에 아쉬워한 이유, 지금도 자금 조달에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