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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선임 없는 KT 주총…지배구조에 분노한 주주 성토만

역대 최대 매출, 경영평가 99.37점 무색…'낙하산 반대' 특별결의 요청도

이장준 기자  2023-03-31 13:45:19
KT
KT 정기 주주총회는 주주들의 성토장이 됐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내이사 안건이 모두 철회된 데 이어 재선임 예정이었던 사외이사들 모두 자진 사퇴했다. 처음에는 7명을 선임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지배구조 리스크에 이사 선임 안건을 단 하나도 상정하지 못했다.

나머지 안건은 무게감이 떨어졌지만 주주 질의는 끊이질 않았다. 다만 안건과 무관하게 지배구조가 망가진 책임을 묻거나 추후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는 특별결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역대 최대 매출을 경신하고 99점이 넘는 경영평가를 받은 게 무색한 모습이다.

◇이사 7명 선임 계획 모두 수포로…탁월한 재무 성과와 대비

KT는 31일 서울 서초구 태봉로 KT연구개발센터에서 제41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제41기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보수한도 승인 △임원퇴직금지급규정 개정 등 총 4개 안건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이날 KT는 본래 강충구, 여은정, 표현명 등 사외이사 3명을 재선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진 사퇴하면서 해당 안건은 폐기됐다. 전일 저녁 국민연금공단이 이들 3명 후보에 대한 안건에 '반대' 혹은 '중립' 의견을 내는 등 주요 이해관계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KT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 선임 안건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앞서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자가 주총 나흘 전에 사임하면서 그가 추천한 서창석·송경민 사내이사 후보 선임 안건도 무효가 됐다. 신규 선임하려 했던 임승태 사외이사 역시 자진 사퇴로 선임 안건이 폐기됐다. 총 7명의 이사 선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다만 상법상 이번에 사임한 사외이사 3명은 새로운 사외이사를 선출할 때까진 권리·의무를 다해야 한다. 즉 임기가 남은 김용헌 이사를 비롯해 강충구·여은정·표현명 이사 등 4명이 임시로 이사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KT는 대표이사 유고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아 경영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표이사 직무대행인 박종욱 사장(사진)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이날 주주총회 역시 박종욱 직무대행이 주도해 진행하게 됐다.

박 사장은 주주들에게 거듭 사과하며 총회를 열었다. 그는 "회사 위기상황에 대해 대표이사 직무대행으로서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올린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새로운 지배구조를 수립하고 모든 임직원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를 조속히 안정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박 직무대행은 "차기 CEO 선임과정에서 4개월간 불확실성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KT의 2만명 임직원은 수많은 위기 상황을 이겨냈다"며 "새로운 대표이사 선임까지 미국 상장법인으로서 절차 5개월 예상하지만 최대한 단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성과와 앞으로 나아갈 사업 전략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금융(신한금융그룹), 미디어(CJ ENM), 모빌리티(현대차그룹) 부문에서 지분 교환을 통해 혁신 사업을 위한 전략적 제휴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부분 협력 사업 내용이 규모가 굉장히 크고 장기간 수행에 따른 길고 어려운 길"이라며 "실행력 강화를 위해 자사주 교환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올해에는 지난 3년간 쌓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 DIGICO)으로서 역량에 알파를 더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사장은 "비 온 뒤 땅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새로운 지배구조하에서 성장 기반을 탄탄히 해 다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탄탄한 재무성과를 보여줬다. 작년 연결 기준 25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1년 전보다 3% 성장했다. 상장 이후 역대 최대 매출 규모에 해당한다.

여기 힘입어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평가 및 보상위원회 경영성과 평가는 100점 만점에 99.37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치권 압박으로 인해 구현모 대표가 연임을 포기했고 공정 경쟁을 통해 선출한 윤경림 사장 역시 중도에 하차했다.

탁월한 정량 평가를 받았지만 취약한 지배구조가 KT의 발목을 잡았다. 한때 10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을 돌파하며 고공 행진하던 KT 주가는 최근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고 현재 3만원을 밑도는 상황이다.

◇아수라장 된 주총장…부실한 거버넌스 책임론, 낙하산 반대 목소리

이에 따라 주총장은 분노한 주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안건 심의나 감사 보고 등 절차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고성이 끊이질 않았다.

박 사장은 "인사말만 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관련 안건에 대한 질문만 부탁드린다"고 거듭 요청했다. 또 "하소연하고 싶은 주주분들의 심리도 잘 알고 있고 저도 (직무대행을 맡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모든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라며 "모든 것에 답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오늘 진행에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이들은 안건과 무관하게 부실한 거버넌스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정부 입김에 따라 낙하산을 꽂으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미영 KT새노조 위원장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된 CEO 선임을 보면서 황당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완전 민영화가 된 사기업 KT에 정치권에서 '감놔라 배놔라'하며 낙하산을 꽂으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권 카르텔'의 대안이 낙하산일 수 없고 KT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 낙하산 선임을 막기 위한 특별결의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주주 역시 "낙하산 이사 방지를 위해 KB국민은행 등 타사 모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민영화된 기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어진다는 데 개인 주주들은 굉장히 분노하고 있고 정부 외압이 심해도 꿋꿋하게 주주 성원과 응원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와 관련 "현재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 구축 TF를 운영하고 있고 주주와 이해관계자 의견이 반영되도록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KT는 정관 일부 변경 승인에 따라 디지코 B2C 고객기반 확대와 렌탈 사업 추진을 위해 시설대여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했다. 또 주주와 소통을 강화를 위해 자기주식에 대한 보고 의무를 신설하고 자기주식을 활용한 상호주 취득 시 주주총회 승인 의무를 신설했다.

*별도 표시한 이사들이 신규 이사 선임 전까지 역할을 수행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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