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KT 차기 리더는

윤경림 사장 사의 표명…부실한 거버넌스가 빚은 촌극

정치권 노골적 인사 개입, 우유부단한 경영진…수용 시 경영공백 불가피, 주주가치 훼손

이장준 기자  2023-03-23 16:19:18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사장(사진)이 사의를 표명했다. 차기 CEO 최종 후보자로 선정된 지 보름 만이다. 그는 앞서 정부와 주주의 우려를 공감한다며 주주총회 전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대로 KT 이사회가 그의 사임 의사를 받아들이면 경영 공백은 불가피하다. 구현모 대표의 연임 불발 이후 정치권의 노골적인 인사 개입에 따른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사회와 경영진이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대응하면서 촌극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주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는 형국이다.

◇사의 표명한 윤경림 사장…'넉 달 만에 세 번째' CEO 선임 후 무산되나

2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윤경림 사장은 최근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했다. CEO 선임 전후 범여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이사진은 이를 만류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KT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경영 공백이 발생한다. 구현모 대표의 임기는 이달 정기 주주총회일이 열리는 31일까지다.

이번 주총에서는 윤경림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서창석 네트워크부문장과 송경민 경영안정화TF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윤 사장이 중도 하차하면 KT 이사회는 다시금 CEO 선임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KT가 CEO를 선정하고도 이를 무른 건 벌써 세 번째다. 작년 12월 구현모 대표가 연임 적격 심사를 통과하고도 경선에 참여한 게 시작이다. KT 정관상 단독 후보로 올라갈 기회를 포기했다. 국민연금공단이 공개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강화를 선언한 데 따른 조치였다.

구 대표가 경선을 요청한 지 보름 만에 KT 이사회는 다시금 최종 후보로 그를 확정했다. 14명의 사외 인사와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13명의 사내 후보자를 심사한 결과였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KT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입장을 냈다. 여권을 중심으로 KT를 향한 날 선 비판도 이어졌다. 이에 KT는 결국 올 들어 경선 결과를 번복했다.

KT는 지난달 완전한 공정 경쟁 체제로 경선을 재돌입하면서 투명성을 강조했다. 사내이사진은 지배구조위원회,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 등 심사 과정에 참석하지 않았다. 또 사외 지원자 및 사내 후보자 명단, 인선자문단 구성, 위원회·이사회 회의 결과 등을 포함해 대표이사 후보 심사 절차와 단계별 심사 결과 등을 전부 투명하게 공개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경제·경영, 리더십, 제휴·투자, 법률, 미래산업 분야 등 업계 전문가들로 인선자문단도 꾸렸다. 인선자문단은 후보자를 검증하면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인사들을 걸러냈다. 이에 따라 4명의 압축후보군(숏리스트)을 추렸는데 모두 KT에 몸담고 있거나 과거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들은 모두 배제됐다. 여권 인사들은 즉각 반발했지만 KT 이사회는 최종 후보로 윤 사장을 낙점했다.

윤 사장도 당선과 함께 "최근 정부와 주주의 우려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후보자로서 주주총회 전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맞춰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 TF를 꾸려 △대표이사 선임절차 △사외이사 등 이사회 구성 △ESG 모범규준 등을 논하면서 정부와 관계 개선을 꾀했다.

하지만 다시 불과 보름 만에 돌연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최종 후보자 선정 이후 보이지 않는 외압이 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사회가 사임을 받아들이면 KT는 최근 넉 달 새 CEO 선임 번복을 세 차례나 하게 되는 촌극을 빚게 된다.

◇시장에서 힘 실어줬는데…주주 피해 안 좋은 선례 남길까

특히 이번에 윤 사장이 물러날 경우 KT의 주주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정치권 눈치를 보고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질 수 있지만 소액주주와 외국인은 윤 사장을 밀어주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윤 후보자 선임에 찬성을 권고하며 힘을 실었다. 국내에서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기업연구소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그의 선임에 찬성 의견을 냈다. 소액 주주들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찬성표를 결집해왔다.

당장은 정부가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이더라도 주총에서 선임된 이후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윤 후보자의 의지와 비전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면접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 회사(디지코, DIGICO)를 확장한 '디지 AI(DIGI.AI)'라는 비전을 앞세우며 KT의 AI 전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외압과 더불어 경영진이 우유부단하게 대응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번 공정 경쟁 결과로 선정된 CEO도 물러날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구 대표 연임이 확정된 작년 11월 3만7000원을 웃돌았던 KT 주가는 거버넌스 이슈가 지속되는 동안 2만원대로 떨어졌고 23일 종가 기준 3만50원을 기록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