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주주친화를 위한 정책 재정비에 나선다. 배당기준일 변경을 통한 소통 강화 등을 추진한다. 수익성 악화로 배당금 규모가 축소된 만큼 정책 개정을 통해 기존 주주와의 신뢰 회복은 물론 신규 투자자 유입까지 꾀한다.
지난해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실적 부진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증시 부진과 거래대금, 수탁 수수료 감소 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증권사별로 차이는 존재하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따른 신용경색 여파도 실적 악화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10대 증권사 중 7곳 '순이익 반토막'증권가 전반에 걸쳐 나타난 수익성 악화는 자기자본 기준 상위 10대 증권사의 실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사실상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 S&T(Sales&Trading) 등의 사업 영역을 리딩하는 동시에 시장 점유율 또한 대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상위 10대 증권사 중 순이익 하락 폭이 큰 증권사는 하나증권과 KB증권이다. 하나증권의 경우 2022년 말 개별 기준 순이익은 1558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5639억원 대비 72.4%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KB증권은 71.5% 감소한 1703억원에 머물렀고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또한 50% 이상 하락한 실적을 기록했다.
상위 10대 증권사 중 상당수가 수익성 하락을 면하지 못했지만 메리츠증권과 신한투자증권 등 2곳은 상승세를 유지했다. 두 증권사 모두 IB 부문에서 수익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1분기와 4분기에 해외 대체투자 부문의 실적이 주효했다. 신한투자증권은 2022년 말 기준 IB부문 영업수익이 전년대비 23% 증가한 가운데 사옥매각에 따른 현금 유입 효과 등을 누렸다. 사옥 매각 대금은 세전 기준으로 4438억원이다.
이러한 순이익 감소는 배당금 축소로 이어졌다. 배당에 필요한 재원이 급격하게 줄면서 예년 수준의 배당금을 유지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재까지 배당 계획을 공시한 10대 증권사 중 배당금이 줄어든 곳은 삼성증권 등을 포함해 6곳이다.
실적 선방을 기록한 메리츠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배당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증가했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2022년 기준 보통주 1주당 배당금(이하 보통주 기준)은 전년대비 35원 증가한 135원이다. 신한투자증권의 1주당 금액은 279원으로 2021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2022년 말 기준 순이익이 전년대비 53% 감소한 4534억원을 기록했지만 1주당 배당금은 1만2800원에서 2만3890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엇갈린 '배당기준일 변경' 배경은주요 증권사 대부분이 2022년 결산 기준 배당금을 줄이기는 했지만 주주환원을 위한 기조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않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업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이번 배당금 축소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금융당국 등이 강조한 배당기준일 변경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는 '배당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는 배당 여부와 배당액이 확정된 이후 배당받을 주주를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주총일 이후로 배당기준일을 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상법 제354조)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연말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하고 이듬해 열리는 주총에서 배당금을 결정하는 형태를 유지 중이다. 이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기준일에 배당 예측이 어렵고 배당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국내 증권사들은 금융위의 이러한 결정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상위 증권사 중 배당기준일을 바꾸기 위한 정관 변경안을 주총에 상정한 증권사는 NH투자증권 등 5곳이다. 키움증권은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주 중에는 도입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총에 상정할 안건은 이사회에서 결정되며 키움증권은 이번 주 내 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상위 증권사 모두가 배당기준일 변경에 곧바로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배당기준일을 바꾸기 위한 정관 변경안을 이번 주총에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B증권 등 4개 증권사의 공통점은 비상장사인 동시에 최대주주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한국금유지주가 최대주주다. 사실상 모회사가 모든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주주환원의 일환인 배당기준일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은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배당절차 개선을 통해 개인투자자에 대한 정보 투명성과 접근성, 투자 예측성 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비상장사인 동시에 최대주주가 지분을 100% 보유한 증권사의 경우 이러한 관점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