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리더는
'D-1' 공정 경쟁에도 노골적인 정치권, 외풍 변수 부상
여권 "내부 카르텔" 지적, 외부 인선자문단 평가에도 무리수…경선은 요식행위?
이장준 기자 2023-03-06 07:48:17
KT의 차기 CEO 선임 과정이 최종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다시금 외풍이 불어닥쳤다. 압축후보군(숏리스트) 발표 이후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내부 카르텔"이라며 반발하면서다. 실상은 정치권에서 밀던 유력 후보들이 모두 탈락하며 노골적으로 지배구조에 개입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 주장을 살펴보면 명분이 전혀 없다.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인선자문단 의견을 받아 평가해 자질이 부족한 후보들은 경선에서 탈락했을 뿐이다. 주주가치를 앞세워 지배구조에 개입한 국민연금공단 역시 되레 KT 기업가치를 갉아먹는 주범이 된 상황이다.
7일 최종 후보자를 확정해 이달 말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겠다는 계획도 틀어질지 주목된다. 정부가 대표 경선을 요식행위 정도로 보고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숏리스트 발표 후 명분 없는 비판, 인선자문단도 非KT 인사 경쟁력↓ 평가
KT 이사회가 밝힌 대표이사 선임절차에 따르면 본래 내일(7일) 면접 심사를 거쳐 대표이사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숏리스트 발표 이후 정치권 동태가 심상치 않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KT CEO 선정 절차를 비판했다. 그동안 앞장서 KT 지배구조를 비판해온 김영식 의원을 비롯해 박성중 과방위 여당 간사, 권성동·윤두현·하영제·허은아·홍석준 의원이 날을 세웠다.
이들은 "KT이사회는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켰다. 차기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며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발동해 KT가 카르텔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엄단 대책을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 주장을 살펴보면 우선 KT CEO 숏리스트에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사장,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부문장 부사장,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부문장 사장, 임헌문 전 KT 매스(Mass)총괄 사장 등 KT에 몸담았던 건 맞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평가절하하기엔 무리다. 지난달 KT는 공개 경쟁 방식으로 CEO 선임 프로세스를 재추진하면서 사내외 후보자군 뿐만 아니라 인선자문단 명단, 면접심사 대상자 등 단계별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를 통해 현직 CEO의 '셀프 연임' 논란 우려도 털어냈고 '주인 없는 사기업'으로서 선진화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모색한 모범 사례로 꼽힐 정도다.
무엇보다 이번 경선이 KT 외부 평가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서 여권 인사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평가다. 후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KT는 경제·경영·리더십·미래산업·법률 분야의 외부 전문가 5인으로 인선자문단을 구성했다.
권오경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김주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신성철 정부 과학기술협력대사, 정동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정해방 전 기획예산처 차관이 여기 해당한다. 후보자들의 지원 서류를 면밀히 검토해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 요건을 기준으로 후보 압축 작업을 진행했다.
테크놀로지(Technology) 리더십과 매니지먼트(Management) 리더십을 두루 살펴 후보자를 검증해 4명으로 구성된 숏리스트를 추린 것이다. 공정 경쟁 결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경영성과를 창출할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탈락했다.
그럼에도 여권에서 반발하는 건 절차가 아니라 후보군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낙하산' 인사를 선임하려는 시도가 무산됐다는 의미다. 앞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나 김기열 전 KTF 사장 등이 자천타천 '윤심'에 부합하는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숏리스트에 오를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거버넌스 개입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주주에게로
대통령실에서도 브리핑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게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지 않냐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입장을 냈다.
이 입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정부가 사기업 거버넌스에 지나치게 개입하면서 주주자본주의 기틀을 흔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KT 주주 및 국민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구현모 대표가 이끈 KT는 한때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국민연금과 정치권에서 거버넌스에 개입한 이후 현재는 8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국민연금의 운용 실적이 악화하면 기금 고갈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발표된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기금 운용 본연의 업무는 제대로 못 하면서 KT 주주와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거버넌스 개입에 따른 피로도도 커지고 있고 2만명이 넘는 KT 구성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KT 내부에서도 이번 숏리스트 발표 이후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단순히 KT 출신만 후보군에 올랐기 때문은 아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도 정치권 줄을 타고 무리하게 도전한 인사들이 탈락한 데 따른 안도의 표현이었다.
ICT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고 경선 절차는 요식행위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며 "지나친 거버넌스 개입으로 시장을 위축시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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