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 재돌입하면서 구현모 대표이사 사장은 다시 후보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선 경선 때와는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 3년간 보여준 경영성과는 탁월했지만 외부에서는 지속적으로 경선 과정의 불투명성 등을 지적하며 정당성을 깎아내렸다. 소유분산 기업이 포진한 금융권에서 임기가 끝난 CEO들이 빠짐없이 교체된 점도 부담을 더한다. 공개경쟁 방식 도입 역시 사실상 외부 인사를 배치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적·비전 흠잡을 데 없는 구현모 대표…트집 잡는 국민연금·정치권
KT는 10일부터 20일까지 차기 대표이사 공개 모집을 진행한다. 구현모 대표가 이미 작년 말 이사회 논의 끝에 차기 CEO 최종 후보자로 결정했지만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를 백지화했다. 구 대표 역시 재차 공개 경쟁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3년간 KT뿐 아니라 그룹 전반적인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2020년 CEO가 된 후 그는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KT가 나아갈 방향으로 '디지코'를 제시했다. 통신사(텔코, Telco)를 넘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전환(DX) 역량을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미래 성장이 기대되지 않거나 다른 사업들과 시너지가 기대되지 않는 계열사는 과감히 정리하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 작업도 활발히 진행됐다. 미디어 부문에서는 2021년 투자 및 기획, 제작, 유통까지 아우르는 콘텐츠 전문 기업 KT스튜디오지니를 만들고 관련 계열사를 산하에 배치해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KT는 지난해 연결 기준 25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상장 이후 역대 최대 매출 규모다. 2019년에는 서비스매출이 14조9400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6조300억원으로 약 7.3% 늘어났다. 특히 같은 기간 기존 통신업인 텔코 B2C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에서 59%로 줄었다.
펀더멘털이 단단해지고 비전을 현실화하면서 KT 주가도 크게 올랐다. 취임 직후인 2020년 3월 말 기준 KT 주가는 2만원을 채 넘지 못했다. 한때는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기도 했을 정도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성과를 냈다.
이미 KT 이사회도 지난 경선 직후 사업 성과와 기업가치 개선, 성장 전략 및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보여준 구 대표의 역량을 인정했다. 앞선 연임 적격 심사와 경선에서 7차례에 걸친 심사를 마쳤지만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정치권 등 압박으로 다시 후보로 돌아갔다.
사실 CEO로서 결격 사유를 걸고 넘어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국민연금은 대표 선임 과정 자체의 불투명성을 지적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열린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정착을 위한 세미나에서 구 대표의 '쪼개기 후원' 등 혐의에도 이사회가 연임을 승인했다고 비판했다. 구 대표는 정치자금법 및 횡령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1500만원을 받았지만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하지만 KT 정관상으로 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이사가 된 후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직을 상실한다. 구 대표는 당시 대표이사도 아니었고 현재 처벌 수준이 확정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치는 만큼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미 '물갈이' 된 다른 소유분산기업…국민연금 등 입김 작용 충분
아울러 이미 다른 소유분산기업 CEO들이 줄줄이 교체됐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우선 김지완 BNK금융 회장이 임기를 남기고 조기 사퇴해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회장으로 내정됐다. 신한금융그룹에서는 조용병 회장의 3연임이 무산되면서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회장으로 올라서게 됐다. 그나마 이들 케이스는 내부 출신 인사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농협금융그룹에서는 손병환 회장 연임이 무산되고 국무조정실장 출신인 이석준 회장이 내정됐다. 우리금융그룹의 경우 손태승 회장 3연임이 무산되고 기획재정부 출신의 임종룡 회장이 부임을 앞두고 있다. '관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 임기가 끝난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ICT 업계 관계자는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권에서도 회장들이 모두 교체됐는데 KT라고 다른 결과가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투명한 절차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외부인사로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KT 이사회가 공개 경쟁 방식을 내걸었다는 점도 여기 한몫한다. 더욱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국내외 주주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최적의 KT 대표이사 상(像)에 대한 의견을 받아 심사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부에서 선호하는 후보를 뽑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국민연금 등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많아 추후 이름을 올릴 외부 후보군에 눈길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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